[리뷰] 꽃씨처럼 날아간 강원무용, 한국 춤 줄기로 모이다
김매자·박재희·권영심·원미자…
도 출신 원로·중견 무용가 8명
각기 다른 대표 유파 춤 선보여
대표 유파 불모지·비주류 역설
강원 무용사 재정립 필요성 확인
“무용계도 몰랐던 강원도 저력”
강원도립무용단이 최근 선보인 기획공연 ‘불휘’는 기획과 출연진 섭외 과정 자체가 춤 같았다. ‘강원특별자치도 출범을 축하하며 강원도 출신 한국무용 명무들과 강원도립무용단이 함께 만드는 류파별 춤전’이라는 간단한 공연소개가 붙었지만, 배경을 들여다 보면 이 문장에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한 강원무용의 역사, 그리고 역설이 있다.
윤혜정 도립무용단 예술감독은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기념무대를 위해 지난 해부터 강원 출신 한국무용가를 찾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막막했다. 강원무용사를 정리한 연구나 기록은 고사하고, 출향 무용인 명단조차 전무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출향 강원인을 수소문한 결과 놀라운 명단이 꾸려졌다.
고성 출신 김매자, 강릉 출신 박재희를 비롯해 한국무용을 이끌어 온 명무 이름들이 연이어 나왔다. 이들을 포함한 원로·중견 한국무용가 8명이 지난 달 26일 춘천문화예술회관에 처음 모였다. 고향에서의 기획공연에 선뜻 함께 하기로 한 이들이 모이자 궁중무용, 무속, 민속, 창무 등 류파별 무대가 한데 펼쳐졌다. 권영심(태백)‘임이조류 입춤’ △경임순(춘천) ‘정민류 교방장고춤’ △정영수(〃) ‘이매방류 살풀이춤’ △윤혜정(속초) ‘조흥동류 진쇠춤’ △원미자(원주) ‘김수악류 교방굿거리춤’ △김수현(〃) ‘김숙자류 도살풀이’ △박재희(강릉) ‘한영숙류 태평무’ △김매자(고성) ‘김매자류 산조, 숨’까지… 이런 무대가 가능했던 것은 강원을 떠난 무용인들이 각자 수련해 온 무용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주류’ 없는 강원무용의 아이러니다.
그간 문화올림픽 실현, 도민과의 가까운 호흡을 위해 대중적 창작요소를 보여줬던 도립무용단은 이날 공연에서만큼은 강원명무들과 함께 전통 한국무용의 진면목을 펼쳤다. 유인상 밴드의 국내 최고 음악과 구음이 어우러져 흥을 돋웠다가, 멋을 풀어내고, 한을 토해냈다. 장승헌 전 춘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의 사회로 이해를 도왔다.
명무 8명의 공연은 앞뒤로 도립무용단이 감쌌다. 소고의 기교와 시나위 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도립무용단의 신 전통춤 레퍼토리 윤혜정류 소고춤이 열고, 화려하게 휘몰아치는 칠고무가 닫았다. 도립무용단원들과 함께 한 윤 감독의 진쇠춤이 정가운데 배치된 것을 보면 처음 함께하는 강원무용의 뿌리들을 관객 앞에 모셔올리면서도, 고향을 떠나 묵묵하게 심신을 갈고 닦아 온 무용가들을 보듬어 안고자 하는 구성으로 읽혔다.
이날 함께 선 무용가들도 서로의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동향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공연 프로그램을 본 무용계도 모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윤혜정 감독은 “강원특별자치도가 출범하는 시점에서 넓게는 문화계, 좁게는 강원무용도 소리없이 성장했고, 엄청난 명무들을 배출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며 “무용계가 몰랐던 강원의 저력이 드러나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일정이 맞지 않거나 강원 출신임을 늦게 알게 되어 이번 공연에 합류하지 못한 이들도 많다. 불휘 ‘시즌2’를 꾸려도 넘칠 정도다. 척박한 문화예술 환경에서도 강원을 떠나지 않고, 지역 무용의 맥을 이어온 무용가들도 이날 함께 해 의미를 더했다.
김말애(삼척) 경희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유옥재(춘천) 전 강원대 교수, 김영주(〃) 전 도립무용단 상임안무자, 박선자(강릉)·고은숙(원주)·양숙희(속초) 무용협회장, 김인숙(춘천) 전 안산문화재단 이사장, 정혜진(〃) 서울시립무용단장, 권금향(태백)· 김희정(〃)· 임수정(춘천), 정혜(원주)·김윤수(속초)·우재현(원주)·김유미(인제) 무용가 등의 이름이 영상으로 무대에 올랐다.
오히려 한 가지 류파가 강원도에서 자리잡았다면 이날 공연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호남, 영남, 경기 등 하면 떠오르는 명인이 있는 다른 지역들과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고향을 떠난 무용가들은 출신을 밝히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말없이 이매방·김백봉·한영숙·임이조·김수악 등 명인들에게 춤을 배웠다.
이번 공연을 통해 강원 근현대 무용사의 체계적 정립을 시작해야 할 당위성도 확인됐다. 홍천 태생으로 알려진 신무용의 선구자 최승희가 가장 먼저 언급된다. 그러나 실제 한국무용이 전수체계를 갖춰 발전해 온 시기는 한국전쟁 후인만큼 이후 활약한 무용가들을 강원무용 1세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최근 별세한 김백봉 선생 등이 한국무용 전공을 맡아 국립무용단을 창단한 연도가 1962년임을 고려하면 강원 무용사의 핵심에는 이날 공연 무대에 오른 원로·중견 명인들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무용가 산실의 양대 산맥인 이화여대와 경희대에서 모두 강원 출신 무용가들이 후학을 기른 점만 봐도 주요 포스트에서 도 출신 무용가들의 중심을 잡아왔음을 알 수 있다. 김매자 선생이 이화여대, 김말애 선생이 경희대에서 제자들을 길러냈다.
특히 한국무용은 지난 수십년간 조선의 전통무용만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무용과 구별하는 개념에서 현대적 창조 등을 거쳐 왔다. 여러 류파에서 이수자들이 뻗어나가고 왕가와 기예, 민중 사이, 전통계승과 창작 사이에서 각자만의 예술세계를 넓혀온 것이 한국무용계다. 이날 공연에서 확인한 강원무용의 역사적 흐름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한국 춤 역사를 이어온 강원 무용가들의 삶 자체가 강원 춤의 역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도립무용단의 젊은 단원과 지역에서 공부하는 차세대 무용가들에게도 희망과 자부심을 주는 계기가 됐다. 윤혜정 감독은 “출향 명무 분들과 도립무용단원들이 함께 공연을 완성시킨 것은 명실상부한 프로 단체로서 손색없이 성장했다는 반증이어서 매우 보람되고 기쁜 일”이라고 밝혔다.
강원 땅에 깊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민들레 꽃씨처럼 전국 곳곳으로 날아갔던 이들이 한국무용의 큰 줄기가 되고, 각 류파에서 꽃을 피워 다시 고향에 모였다. 현대적 창조를 거치며 면면히 흐르는 한국무용의 한가운데, 강원무용도 흥과 멋, 한과 태의 부피감을 갖게 됐다. 이 부피감을 계속 늘려갈 수 있을까. 그러려면 이번 공연처럼 뿌리를 찾고, 꽃씨를 모으고, 아래서부터 다시 피워내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김여진 beatl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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