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25서 전사한 하버드대 18명, 그들은 왜 한국에 갔나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미 하버드대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6·25에서 전사했거나 실종된 하버드대(college) 졸업생 18명을 기리면서 “이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윤 대통령이 방문한 하버드대 추모 교회 북쪽 벽에는 18명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걸려 있다. 윤 대통령의 이날 방문을 계기로 6·25전쟁 때 목숨을 바친 미국 하버드대 출신 전사자들이 재조명받고 있다. 하버드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 지역에서 한 명이 합격할까 말까 하는 미국의 초일류 대학이다. 이들은 엘리트 사회로 쉽게 진입할 기회를 일단 접고 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한국으로 향했을까.
1953년까지 졸업한 연도순으로 가장 위쪽에 있는 이름은 1938년 졸업생 피터 에밀리오 아리올리 주니어(Arioli Jr.). 그는 미 해병 1사단 소속 군의관으로 1950년 12월 3일 장진호 전투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다가 35세에 전사했다. 사망 직후 임시로 현장에 매장됐지만 이후 유해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12만 중공군을 상대로 미 해병대가 벌인 혈투였다.
1942년 졸업한 에드윈 구스타브 에클런드 주니어(Eklund Jr.) 미 육군 대위는 9보병연대 소속 군의관으로 1950년 12월 청천강 인근 군우리에서 적의 포로가 됐다. 1951년 2월 북한에서 영양실조와 이질, 폐렴 등으로 29세에 숨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유해는 찾지 못했다.
1938년 졸업생 아이올리를 시작으로 6·25가 발발하기 이전인 1950년까지 졸업생이 절반을 넘는 11명이다. 전사자 중엔 1951년 졸업생이 6명으로 가장 많다. 대부분이 대학 졸업 직후 한국으로 향했다. 셰로드 에머슨 스키너 주니어(Skinner Jr.) 해병대 소위는 1952년 10월 현재의 판문점 부근 격전지 ‘후크 고지’에서 적의 수류탄이 기지 안에 떨어지자 수류탄 위로 몸을 던져 다른 대원 2명을 보호하고 숨졌다. 한국에 파견된 지 한 달 만이었고, 23세였다. 1951년 졸업한 윌버 리 밴 브레멘(Bremen) 육군 35보병연대 일병은 그해 9월 7일 강원도 평강군 서방산 일대에서 적과 전투 중 22세로 숨졌다. 유일한 1953년 졸업생 데이비드 호지만 플라이트(Flight) 육군 461보병 대대 병장은 1953년 7월 14일 작전 중 실종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하버드대 연설에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하버드인이 2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고 했는데, 이는 윌리엄 해밀턴 쇼(Shaw) 대위를 가리킨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 참가한 그의 맏며느리 캐럴과 손자 윌리엄을 향해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쇼 대위는 하버드대 학부를 졸업하진 않았지만, 미 오하이오 웨슬린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다가 한국으로 갔다. 1922년 평양에서 미국인 선교사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까지 평양에서 다녔다. 한국을 ‘조국’이라 불렀다.
그는 미 해군 장교로 2차 세계 대전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도 참전한 경험이 있었다. 1950년 7월, 생후 9개월과 다섯 살짜리 두 아들을 처가에 맡기고 미 해군에 재입대했다. 한국어에 능통한 정보 장교였던 쇼 대위는 더글러스 맥아더 당시 미 극동 사령관을 보좌하며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기여했다. 서울 탈환 작전에 참가한 쇼 대위는 1950년 9월 22일, 미 해병 정찰대를 이끌고 나섰다가 녹번리(현재 녹번동)에서 적의 매복 공격을 받았다. 불과 한 주 전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이다. 공부는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한국 해군의 이성호(제5대 해군참모총장) 중령에게 한 말이 유언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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