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타이밍
출산·양육 지원제도 보완, 복지국가 향해 나아가야
김종천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영파의료재단 이사장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지출 규모가 14.8%로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0% 수준이고 38개 회원국 중 34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세계경제순위 12위 경제 대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뭔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국가가 경제적 여건이 되면 그에 걸맞은 공공 지출을 통해 지속발전 가능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텐데 우리의 경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일본이 경제적 부와 성장을 거듭한 1970~80년대 경제적 수준에 걸맞은 공공 지출을 소홀히 한 결과 역대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초고령 사회를 맞이한 모습을 보면 우리도 그 뒤를 따라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경제적인 이유로 ‘나 혼자 살기도 힘든데 무슨 결혼이며 아이냐’고 말하는 젊은이들과 ‘아이를 낳기만 하면 걱정 없이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지만 모든 게 다 돈이라 아이는 엄두도 못 낸다’는 태도를 갖는 갓 결혼한 세대들의 처지를 보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없는 듯하다. 어쩌면 젊은 세대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체념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심각하다는 것을 독자들도 공감할 것이다. 특히나 우리 국민의 태도를 보면 이제 성장을 멈추는 것이 아닌지 하는 불안감마저 감지된다. 다양한 지표에서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국민의 삶이 행복해지고 살기 좋아졌는지에 대한 물음에 과연 “그렇다”고 대답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국민은 행복 순위에서도 경제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가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행복한 국가’ 순위 35위인 것을 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사회복지 지출 수준 OECD 38개 회원국 중 34위에 비례하고 있다. 유엔(UN) 자문기관인 UN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UN-SDSN)가 올해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23’에서도 우리나라 국민이 스스로 평가한 ‘삶의 질’ 행복 지수가 10점 만점에 5.951점을 기록해 조사 대상 137개국 중에서 57위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 지출 순위 34위에 비해 일본은 10위이다. 순위만을 보면 상당한 지출을 하는 복지국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본은 앞서 언급한 대로 경제적 여건이 가능했던 시기에 공공지출의 타이밍을 놓쳐 세계 최고의 초고령사회를 맞이했고 그에 따른 노령인구를 위한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비 지출을 부담하다 보니 여타 분야의 복지는 후진국 수준인 것이다. 결국 일본은 복지국가 수준의 공공지출을 하면서도 복지는 후진국 수준이 된 것이다. 더욱이 출생률 감소로 줄어든 젊은 세대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세금과 복지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일본의 사례는 남의 일이 아니다. 조만간 세계 최고 초고령화 사회가 될 우리의 미래상이다. 어쩌면 일본보다 더 혹독하게 치러야 할 국가 존립의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 상태로 가다가는 저 출산율 세계 1위, 고령화 속도 세계 1위인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2050년 세계 15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으로 골드만삭스 글로벌 투자은행(IB)이 전망하고 있다. ‘2075년으로 가는 길’이라는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골드만삭스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40년대 0.8%로 떨어진 뒤 2060년대 -0.1%, 2070년대 -0.2% 등으로 34개국 중 마이너스로 전환하는 유일한 국가로 지목하고 있다. 시급히 국가의 경제적 수준에 걸맞은 공공 지출을 서두르지 않으면 일본 이상의 문제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OECD 회원국 중에서 GDP 대비 지출을 가장 많이 하는 프랑스(31%)를 비롯해 덴마크·이탈리아(28%), 독일(26%) 등의 수준까지는 당장 못 하더라도 국가의 미래를 위한 공공 지출은 파격적으로 늘려 나가야 한다.
초고령화 사회의 근본 원인은 저출산에 있다. 우리 사회에서 출산과 양육이 어려운 것은 주거·고용·교육과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싶어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만한 세상에 요구되는 삶의 조건들은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는 일단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돼야 하고,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유연한 노동시간을 비롯한 고용이 보장돼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동안 보건의료, 교육문화, 안전 등의 환경이 보장돼야 한다. 아이를 낳아 양가 부모와 가족의 부담이 되는 사회에서 결코 출산율이 올라갈 리가 없다. 더욱이 아이의 양육이 어머니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저출산 문제 해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책임은 더 이상 개인이나 개별 가정에 오롯이 지울 수 없다는 전제하에 그에 상응하는 제도적 환경의 변화가 있어야만 지속발전 가능한 경제 대국을 넘어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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