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아카시아는 내 가슴에
바야흐로 아카시아의 계절이다. 오월의 싱그러움은 아카시아 향기로부터 온다고 해도 과언 아닐성싶다. 장산 올라가는 산길에 아카시아꽃들이 주렁주렁, 벌들의 잔칫상이 하얗게 차려졌다. 아마 저들 중 몇몇은 꽃술에 취해 해거름쯤엔 틀림없이 팔자춤을 추게 되리라. 아니 저들보다도 내가 먼저 향기에 취해, 바위에 앉은 채 비몽사몽 추억에 빠져든다.
어릴 적 고향 집 뒤편 언덕배기에 아카시아 두 그루가 있었다. 꽤 오래된 나무라 키도 컸을 뿐만 아니라 둥치가 엄청났다. 여러 갈래의 큰 가지들이 축 늘어져, 서너 개는 우리 집 담장에 거의 걸쳐 있었다. 하여 아카시아꽃이 만발할 때면 후각에 민감한 내 코는 마비되고도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카시아 둘레는 손바닥만 한 대나무밭이어서 댓잎들이 바람잡이 역할을 톡톡히 했으니까.
코만 마비된 게 아니었다. 혓바닥도 마비됐던 적이 있다. 그즈음은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늘 배가 고팠다. 열한 살 전후, 한창 뛰놀 나이라 허기도 빨리 져 배가 고프면 손에 잡히는 대로 입에 후딱 넣기 바빴다. 독풀이 아닌 이상. 그런 때 아카시아꽃을 한 움큼 훑어 입에 넣으면 단맛에 배고픔도 잊곤 했다. 보릿고개 시절엔 그 하얀 꽃들이 지금의 쌀밥 가치보다 더 나았으니까.
내 작은방의 측문을 열고 나가 몇 발자국만 떼면, 축 늘어진 아카시아 가지에 닿았다. 어느 봄날 밤, 배도 고프고 단맛도 당겨 측문을 열고 나갔다. 내 키 높이의 담장에 손만 뻗으면 아카시아꽃을 딸 수 있어, 여느 때처럼 총상꽃차례로 달린 한 꼭지를 땄다. 어둠 속에서 얼른 한 줌을 쭉 훑어 입에 넣었다가 그만 아다다닥! 낮에 꽃 잔치하러 왔던 벌이 꽃술에 취해 돌아가지 않고 꽃잎 속에 자고 있다, 내 혓바닥에 벌침을 쏴 버린 거다.
아카시아는 꽃만이 아니라 잎도 그리움에 젖게 한다. 아카시아 잎은 깃꼴겹잎이라 가지런해서 시각적으로 보기 좋지 않은감. 놀 만한 게 없던 시절의 농촌에서, 그 아카시아 가지로 동생과 잎 떼먹기 놀이를 했다. 우선 아카시아 가지를 하나씩 꺾어온다. 그다음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둘 중 하나를 먼저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 가지마다 달린 잎의 수가 다르므로 많이 달린 가지를 차지하기 위해.
이 가지 뽑기가 끝나면 본 게임에 들어간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상대편 가지에서 잎 한 장을 떼는 식으로 하여, 마지막에 많이 남은 사람이 승자가 된다. 한데 나는 이기는데 몰두한 게 아니라 동생을 골리는 재미로 이 놀이를 했다. 동생은 가위바위보 해서 이기면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게임 규칙으로 정하지 않았음에도, 내 가지에서 순서대로 잎을 한 장씩 떼어갔다. 하지만 나는 가지런한 잎 중에서 솎아내듯이 듬성듬성 하나씩 떼어갔다. 그게 이빨 빠진 것처럼 보기 싫었던 동생은 차례대로 떼가라 소리치고, 나는 골리면서 너도 똑같이 하면 되지 않느냐 응수하고.
이 놀이가 싱거워지거나 동생이 씨근대면 나는 골리는 대상을 바꿨다. 바로 토끼였다. 토끼는 콩잎을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이 아카시아도 콩과의 낙엽교목이라서 그런지 그 잎을 잘 먹었다. 그래서 아카시아 가지를 몇 개 떼어 토끼장 앞으로 갔다. 개중 긴 가지를 먼저 들어선 토끼의 긴 귀를 간질이다가 토끼가 먹을라치면 쏙 당기고, 쏙 당기고. 다음으로 토끼 입 쪽으로 들이밀었다가 당기는 ‘밀당’ 놀이로 골리곤 했다. 당시는 토끼를 돈 되는 가축으로 키웠기 때문에 배불리 먹여야 해서 먹잇감을 실제로 뺏은 적은 없다마는.
언덕배기의 그 아카시아는 우리 집 뒤 언덕 위로 그늘도 크게 드리웠다. 이맘때는 농번기 전이어서 공휴일 낮엔 동네 누나들이 거기 모여 놀곤 했다. 낭랑 18세의 누나들이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유행가를 불렀는데, 이용복 가수의 ‘사랑의 모닥불’은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이렇게 오월이 오면 벌침의 아픔도, 꽃잎의 달콤함도, 노랫소리의 아련함도 아카시아 향기와 함께 내 가슴에 피어난다. 날마다 꿈속에서 헤매도 좋으리만큼 아카시아 껌과 같이 달라붙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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