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극대노’ vs ‘딥빡’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며 가장 당혹스러울 때는 직접 편집한 책의 오탈자를 제보받는 순간이다. 잡아도 잡아도 사라지지 않는 바퀴벌레처럼 중쇄를 거듭해도 오탈자가 남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15쇄 넘게 중쇄한 책에서 ‘자천거’라는 오자를 찾아내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그래도 이런 실수는 오히려 가벼운 경우에 속한다. 저자 약력의 ‘서양사학과’를 ‘사양사학과’로 잘못 적어 전량을 다시 인쇄한 일은 두고두고 아찔하다. 오타만으로도 민망한데 저자를 저물어가는 사양 학과의 교수로 만들어버리다니. 꽃 이름을 ‘연산홍’으로 버젓이 써놓은 일도 있었다. 흔히 말하고 쓰는 ‘연산홍’이 ‘영산홍’의 오류임을 알지 못한 탓이다.
심각한 오탈자는 경위서 몇 장으로는 끝나지 않기 때문에 늘 오류가 없도록 조심한다. 그런 만큼 남의 오류에도 더 민감해지기 일쑤다. 명백한 실수일 때는 그러려니 하지만, 반복해서 나오는 잘못을 두고는 생각이 많아진다. 가령 요즘 방송 자막에도 자주 나오는 ‘극대노’라는 단어. 크게 화가 났다는 뜻으로 썼을 ‘대노’는 ‘대로’로 써야 옳다. ‘걸맞은’을 ‘걸맞는’으로 쓴다든가 ‘일사불란’을 ‘일사분란’으로 쓴다든가 하는 비슷한 예시는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토로하던 중 의외의 반문을 들었다. “그럼 ‘극대노’ 말고 ‘딥빡’은 괜찮아?” 명백한 오류보다 고치기도 마땅찮은 신조어가 더 낫겠느냐는 뜻이었다. ‘딥빡’을 안 된다고 하면, 이미 널리 쓰이는 수많은 단어는 미디어에서 버려져야 하느냐는 질문이 뒤따를 것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언어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이미 유통되는 말은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말에 일견 수긍이 가지만, 명백한 잘못이 고쳐지지 않는 현실도 이상하지 않은가 싶다. 그러다 보면 결론은 늘 한 가지, ‘자천거’나 ‘사양사학과’부터 없애고 말하자는 것. 어디선가 “너나 잘하세요” 하는 영화 속 대사가 들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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