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헨리 8세의 불행한 아내들? 이제 날 위한 노랠 부르겠어!
눈부시게 번쩍이는 조명과 불꽃, 강렬한 드럼 비트. 무대 위 여배우 여섯 명의 화려한 실루엣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환호와 박수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식스(Six) 더 뮤지컬’이 공연 중인 서울 삼성동 극장 아티움의 공기는 록 스타 콘서트처럼 뜨겁다. 그간 우리 뮤지컬 공연장에선 관객이 정자세로 앉아 정면만 주시하는 게 당연했지만, 여기선 다르다. 공연 내내 모두가 자유롭게 몸을 흔들며 신나게 박수 치고 환호한다. 특별한 풍경이다.
주인공은 16세기 잉글랜드 튜더 왕조의 헨리 8세(1491~1587)와 공식 결혼했던 여섯 왕비들. 헨리 8세는 이혼을 불허하는 로마 가톨릭 교황청에 맞서 영국 성공회를 세운 왕이다. 이 바람둥이 왕이 적통을 이을 왕자를 얻으려 배우자를 갈아 치우는 동안, 왕비들은 각각 이혼, 참수, 사망, 이혼, 참수, 생존의 잔인한 운명을 겪었다.
500년 전 잉글랜드 왕비들의 이야기에 관객이 열광하는 건 이 뮤지컬이 ‘왕의 여자’로만 기억되던 여성들 각각에게 개성과 자신만의 목소리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24년 결혼 생활에도 딸 하나뿐이었던 탓에 이혼당한 ‘아라곤의 캐서린’,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비극의 주인공 ‘앤 불린’ 등 왕비들은 기구했던 자신의 사연을 신나는 노래, 재치 있는 유머와 몸 개그에 실어 털어놓는다. 폭소와 환호가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남자들의 변덕에 희생되고, 그림과 실제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혼당하며, 정부(情婦)와 사생아가 수두룩한 남편 왕에 의해 간통을 이유로 참수당했다. 그런 이들이 누구 운명이 가장 가혹한지 가려내겠다고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관객의 박수를 유도하며 경쟁하는 극 구성 자체가 블랙 코미디다. 팝 음악 팬이라면 왕비들 모습과 노래에서 비욘세, 아델, 시아 등 최고 여성 팝 가수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공연 막바지, 무대 위 여섯 왕비들은 누가 더 불행했는지 경쟁하는 것도, 왕의 아내로만 기억되는 것도 거부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주인공인 노래와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모든 여성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우는 현재적 메시지다.
지난해 미 공연계 최고 권위 토니상 시상식에서, 이 뮤지컬의 고난도 노래들은 최우수 오리지널 음악상을, 화려한 반짝이 드레스는 의상 디자인상을 받았다. 지난 3월부터 3주간의 영국 투어팀 공연 뒤 우리 배우들이 한국어 공연으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극장 천장을 찢을 듯한 가창력으로 관객의 가슴을 뒤흔든다. 비영어 공연은 한국이 최초. 공연은 다음 달 25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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