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12] 한 달 밥값 안 돼도 뇌물
이제야 알겠군. 나는 허버트의 오랜 친구이고, 그의 업적을 몹시 존경하는 사람이오. 그런데 당신이 직접, 간접적으로 나를 공격했소. 그래서 당신을 천거하지 않는 것은 보복 행위라고 오해될 소지가 있었소. 나는 두 사람의 장점을 면밀히 대조했고, 그 결과는 당신이 알고 있는 바와 같소. 나는 아마도 내가 복수심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허영심에 무릎을 꿇었던 것 같소.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당신의 전략은 적중했소.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뇌물’ 중에서
2021년 민주당 내 선거에서 의원 수십 명에게 돈 봉투가 뿌려졌다는 의혹이 터졌다. 야당 최고위원은 ‘당과 캠프는 구분해야 한다’며 책임에서 발을 뺐다. ‘이런 관행은 없어져야 하지만, 한 달 밥값도 안 되는 50만원은 실무자에게 지급할 수 있으며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300만원을 욕심낼 이유가 없다’는 말도 했다.
소설 속 교수는 학술회의에 보낼 두 후보 중 한 명을 추천해야 했다. 그가 허버트와 좋은 관계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었고 에이나르손은 교만한 사람이었다. 때마침 교수를 공격하는 논문이 발표된다. 익명이었지만 에이나르손이 썼다는 건 학계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었다. 교수는 자기가 공정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에이나르손을 뽑지 않을 수 없었다.
짧은 소설의 제목은 ‘뇌물’이다. 공개적 비판과 공격이 금품보다 확실하게 선택에 영향을 미쳤으니 영악한 뇌물이 된 셈이다. 하물며 돈이다. 국회의원에겐 한 달 밥값도 안 되는 ‘푼돈’이라지만 받은 게 있으면 갚고 싶은 게 인간의 양심이다. 더구나 선거 기간 중 금품 요구나 알선, 제공은 범법 행위로 규정되어 있다.
현직 야당 최고위원이 방송에 나와 ‘밥값도 안 되는 돈’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선거 때마다 금품과 뇌물이 오가는 건 다반사인데 왜들 놀라고 검찰까지 나서서 수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법은 우리가 만든다. 우리가 만든 법이니 우리는 법 위에 있다’는 생각이 없다면 가능한 말일까. 면책특권, 불체포특권까지 누리며 위법을 죄라고 생각 못 하는 사람들이 1인 헌법 기관,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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