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학에 온 제 잘못이죠”... 재정난 지방대 학생의 한숨 [기자의 시각]

김은경 기자 2023. 5. 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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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한 대학교 강의실에 학생들 이름이 적혀 있는 사물함은 문이 열린 채 방치돼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올해 초, 지방 사립대의 ‘신입생 영업’ 실태를 기사로 썼다. 대학 입학생 모집이 어려워진 탓에 수시 접수가 시작되는 가을마다 교수들이 고등학교를 돌며 홍보한다는 웃지 못할 사연이었다. 며칠 전 다녀온 경남 진주의 한국국제대 교수들은 이런 ‘앵벌이’를 안 한 지 4~5년쯤 됐다고 한다. 재정난으로 5년째 임금이 안 나오고 교직원 상당수가 학교를 떠나면서 더 이상 신입생을 안 받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남은 교직원들은 자존심은 상할지언정 어떻게든 대학을 살려보려고 다 같이 ‘으샤으샤’ 신입생 모시기를 했던 때가 차라리 나았다고 기억했다.

‘벚꽃 피는 순으로 망한다’는 얘기가 나돈 지는 5년도 넘었다. 지난 2018년 8월 교육부는 향후 대입 정원과 고등학생 수를 단순 계산해 “2021년까지 대학 38곳이 폐교될 것”이라는 비공식 예측을 내놨다. 하지만 이후 지금까지 실제 문 닫은 대학은 4곳뿐이다. 폐교 쓰나미가 올 것이란 전망과 달리 더딘 것이다.

생각보다 상황이 나쁘지 않은 것일까. 반대다. 이미 문을 닫았어도 이상하지 않을 대학들이 버티고 있다는, 더 나쁜 징후다. 대학들은 적자를 조금이라도 덜 내기 위해 교직원을 줄이고 낡거나 고장 난 시설을 방치한다. 혁신이나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대학이 원래 하는 일인 교육과 연구도 점차 손을 놓는다. 사람으로 치면 죽지 않을 정도로 물만 마시면서 웅크려 숨만 쉬는 셈이다. 대학이 산송장이 돼서 연명하는 동안 교육은 파행하고 체불 임금은 불어난다.

이런 대학들이 왜 빨리 문을 닫지 않을까. 현행 사립학교법상 사립대 법인이 청산하면 남은 건물과 땅은 국고나 지자체로 귀속된다. 막대한 개인 재산을 들여 대학을 세운 설립자나 그 자녀들이 쉽게 대학 경영을 놓지 못하는 까닭이다. 강제 폐쇄하는 것도 쉽지 않다. 법인이 중대 비리를 저지르거나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학생이 실제로 피해를 입고 나서야 정부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것도 수차례 계고를 거쳐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학을 진단하고 회생이 어려운 경우 폐쇄를 강제할 수 있는 법안(사립대학 구조 개선 지원법)이 지난 9월 국회에 발의됐지만 수개월째 잠자고 있다. 그동안 한계 대학 구성원들의 삶은 흘러가고 있다.

한국국제대는 재정 악화로 건물과 교정이 지저분하게 방치되고 제대로 된 교육과정 운영조차 어려워지고 있었다. 캠퍼스를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물을 붓는 4학년생이었다. 말을 붙이려고 ‘학생 식당이 없어져 불편하겠다’고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이런 대학에 온 제 잘못이죠.” 재수를 안 한 것, 대입 원서를 쓰기 전 조사를 제대로 안 한 것, 집 근처 대학에 입학한 것, 편입을 하지 않은 것… 무슨 명목을 갖다 붙여도, 그 대가라기에는 너무 참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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