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영국 음식이 맛없는 이유
영국 유학을 하다 보면 도대체 뭘 먹고 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많은 분들이 영국 음식이 맛이 없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걱정을 해준다. 고급스럽고 맛있는 음식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람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요리를 많이 떠올릴 것이다. 반대로 맛없는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를 생각할 때 필자는 사람들이 1초의 고민도 없이 영국을 떠올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인식은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다. 인터넷에서 많이 돌아다니는 ‘웃기는 짤’ 중에 영국 음식이 주제로 만들어진 것이 꽤 있다. 그중 ‘정어리 파이’라는 게 있는데 비주얼이 압도적이다. 여러 마리의 정어리 머리가 밖으로 나오게 파이에 꽂아 그대로 구운 음식이라 생선 머리가 노골적으로 사람을 쳐다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 친구들이 이 정어리 파이 사진을 필자에게 보내주며 안부를 묻는다.
이 칼럼의 첫 부분에 언급된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필자는 주로 한식을 해 먹는다. 한식을 안 먹을 때는 파스타 같은 다른 외국 음식을 해 먹는다. 이건 필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친구들과 무언가를 축하하기 위해 멋진 곳에서 좋은 식사를 계획할 때도 당연히 외국 음식을 생각한다. 영국 가정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있는 음식도 파스타다. 웃기게도 영국 사람들도 영국 음식을 잘 해먹지 않는다. 영국에서 가장 많은 분점을 가지고 있는 프랜차이즈 식당들도 다 다른 나라의 음식이다. 지금까지 언급된 이야기들은 매우 현실적인 영국의 식문화에 대한 인식과 일상이다.
영국의 명소나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영국적 요소들은 식민주의 시대에 영국이 식민지에서 뺏어 오거나 수입해온 문화와 문화재들이 대부분이다. 대영박물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들과 식자재 같은 것들이다. 영국인들이 매일 마시는 차도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다.
이렇게 영국이 음식문화의 발달에 소홀했던 이유는 산업혁명의 영향이 크다.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농산물의 생산보다는 기술 발달에 큰 중점을 두게 했다. 풍족하고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하기에는 열악한 기후조건도 무시할 수 없다. 영국에서 살다 보면 계절에 상관없이 햇빛을 보기가 힘들고, 비가 오다가 바람도 불다가 결국 하루 안에 사계절을 다 겪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날씨가 좋은 날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모두가 밖에 나와 일광욕을 한다.
이러한 기후환경으로 인해 품질이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어려우니 나라를 대표할 만한 빵이나 와인조차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만들기도 어려운 환경에서 산업혁명으로 밤낮없이 일까지 해야 했으니 좋은 음식 문화를 만들기는커녕 끼니를 대충 때우고 일만 하기에도 벅찼을 것이다.
따라서 영국이 식민지를 만들고 플랜테이션 농업을 강행한 것은 영국 내에서 개선하기 어려운 기후환경과 농산물 문제를 식민지의 다른 환경과 노동력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절대로 정당화할 수 없는 인류의 역사지만 말이다.
이러한 가운데도 영국을 대표하는 국민 음식들이 당연히 있다. 피시앤칩스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영국 음식으로 튀긴 대구와 감자튀김 요리다. 펍에서 자주 먹는 요리인데 맥주와 같이 먹으면 꽤 맛있다. 웃기게도 맛이 없기 힘들어 보이는 이 피시앤칩스도 의외로 맛없게 만드는 곳이 영국에 많다.
두 번째로 잘 알려진 음식은 선데이로스트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영국인들이 일요일에 즐기는 전통음식이다. 가장 전통적인 형태는 그레이비소스를 얹은 채소와 로스트비프, 그리고 요크셔푸딩으로 이뤄져 있다. 가정에서도 많이 만들어 먹지만 필자는 주로 친구들과 펍에서 먹는 편이다.
결론적으로는 이렇게 영국도 국민음식이 있긴 하지만 열악한 기후조건과 식민지 시대의 영향으로 인한 외국 음식문화 수입으로 현대 영국의 식문화는 그 음식의 근원지를 찾는 것이 의미가 없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인류가 세계화 시대에 진입하면서 그 영향이 더 커지는 듯하다. 음식이 문화의 다양성을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라는 흥미로운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오늘 저녁은 친구와 선데이로스트를 먹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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