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기 칼럼] 폭력적 성장에 감춰진 돌봄노동
오래전 교통사고로 한동안 정형외과 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다. 의료진의 노고를 실감한 계기가 됐다. 외래진료만 받을 때는 의사나 간호사가 하는 일을 잘 몰랐다. 먹고 자고 치료받느라 그들에게 24시간 온전히 나를 맡기면서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 것이다. 밤이 되면 병동에서는 온갖 사건이 벌어진다. 비교적 멀쩡한 것 같던 환자들은 밤마다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친다. 간호사가 가장 먼저 달려오고, 쪽잠 자던 당직의사도 뒤통수에 까치집을 지은 채 불려나온다.
복합골절로 양팔과 한쪽 다리에 깁스를 했으니, 입원 초기에는 혼자 뒤척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발가락 움직임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감각이 둔해질 때가 간혹 있었다. 깜짝 놀라 내 발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는 산소호흡기, 견디기 어려운 통증에는 진통제 신세를 수시로 져야 했다. 까탈스러운 요청에도 의료진은 인내심과 배려를 잃지 않고 돌봄을 제공했다.
한쪽 다리를 절단한 노인이 같은 병실에 있었는데,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쯤 한밤중에 침상에서 소변을 보고는 간호사를 소리질러 호출했다. 그때마다 간호사는 시트를 갈고, 노인의 환자복을 벗겨 물수건으로 몸을 씻긴 뒤 갈아입혔다. “다음에는 그러지 마세요”라며 노인을 다독였다. ‘백의의 천사’는 소설 속 표현일 뿐이라고 여겼던 생각을 바꾼 것은 그 무렵이었다.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의료법에서 간호인력 관련 조항을 독립시킨 법이다. 간호사,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의 업무 영역을 규정하고, 근무환경·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았다. 2005년부터 입법을 시도해 18년 만에 제정 결실을 본 것이다. 대표적 돌봄 노동자인 간호사가 적절한 보상을 받는 법적 장치가 마련됐으니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의사를 중심으로 한 의료단체와 국민의힘 반발이 거세다. 보건의료 단체들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가면서 파업을 예고했다. 간호법 통과 때 표결에 불참했던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기로 했다. 대선 후보 시절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해 간호법 제정을 돕겠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약속을 저버렸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의사단체 등은 간호법이 의료 협력체계를 무너뜨리게 된다며 반대한다. 장기적으로는 의사의 지도 없이 간호사가 단독으로 의료행위를 하거나 개원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을 보면 간호사는 현재 범위를 넘어서는 업무를 할 수 없다. 다만 법이 만들어졌으니 향후 시행령 등을 통해 영역을 확대할 여지는 있다.
의사들로서는 현재 자신들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나 의료시설 설립을 장래에 간호사와 나눠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걱정하는 것이다. ‘밥그릇 싸움’과 다르지 않다. 의사나 검사, 변호사, 정치인 등 권력과 부를 독점적으로 차지한 집단일수록 밥그릇 지키기에 열중한다. 간호법 표결 때 국민의힘은 간호사 출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의사 출신 의원이 당론을 거스르는 투표를 했다. 어느 측면에서 보는가에 달라지기는 해도 당론에는 전체 국민의 복리 증진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다. 그러나 당론에 반해 투표한 의원들에게는 소속 집단의 이해가 가장 중요할 뿐이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모든 시민이 고르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같은 사회주의적 특성으로 의료 서비스를 공공재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전체의 90%를 민간에서 공급하는 만큼 민간재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서비스 공급자이자 사용자인 병원과 의사는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늘리는 데 골몰한다. 의료 서비스 산업이 성장하는 데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요양보호사 등 돌봄 노동자의 역할이 컸다.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연구교수는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서 자연·돈·노동·돌봄·식량·에너지·생명 등 7가지 저렴한 것들 덕분에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됐다고 주장한다. 저렴하다는 의미에 대해 파텔 교수는 “적은 보상을 주고 동원하는 폭력”이라고 규정했다. 그 결과 인류가 직면한 것은 극단적인 불평등과 기후변화, 금융불안 등이다.
자연과 인간에 턱없이 적게 보상하며 유지해온 폭력적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대의 이익을 내기 위해 최소의 비용만을 지불해온 관행을 바꿔야 한다. 간호법 제정이 다른 분야 돌봄 노동자들에게도 정당한 권리와 보상을 쟁취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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