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탈세계화는 없다…美 투자 늘려도 中 사업 유지해야"

김정남 2023. 5. 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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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 특별인터뷰
신뢰 결여된 미·중, 갈등 고조 불가피
경제는 달라, 양국 교역액은 사상 최대
尹도 한중 경제관계 악화 피하려는 듯
NCG, 확장억제 강화…美 대선 이후 바뀔 수도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세계화는 표류하고 있지만 탈세계화(deglobalization)로 가지는 않을 겁니다.”

세계 최대 정치 리스크 컨설팅 싱크탱크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회장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데일리와 특별 인터뷰를 통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여전히 중국에서 주요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초미세 공정의 제품을 생산하지는 않겠지만) 이를 계속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말했다.

브레머 회장은 특정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주요국 정부와 기업 리더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국제정치의 대가다. 특히 누구도 글로벌 의제를 단독으로 결정하지 못 한다는 ‘G0’(G제로) 이론을 정립한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한국 정부 역시 자문을 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대 정치 리스크 컨설팅 싱크탱크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회장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더 투자하고 있지만, 그것은 중국 사업을 유지하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진=브레머 회장 제공)

“삼성, 中 공장 유지하며 美 더 투자”

그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지켜본 이후 앞으로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악화할 것으로 봤다. 브레머 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관계에 있는 두 나라(미국과 중국) 사이의 신뢰는 전적으로 결여돼 있다”며 “두 나라가 갈등을 관리하기는 하지만 부정적인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중간 정치적으로 날이 선 수사는 계속 오갈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브레머 회장은 그러나 이를 두고 ‘세계화의 종말’ ‘탈세계화의 시작’으로 판단하지는 않았다. 그가 그러면서 제시한 통계는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미중간 교역액이다. 지난해 수출과 수입을 더한 두 나라간 교역액은 6906억달러(약 927조원)로 전년 대비 5.0% 증가했다. 기존 최대치였던 2018년 6615억달러를 뛰어넘었다. 미국이 정치적으로는 대(對)중국 무역에서 장벽을 치고 있지만, 많은 기업은 여전히 중국을 끊어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브레머 회장은 “최근 공급망 사슬은 분명히 본국 혹은 동맹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면서도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더 투자하고 있지만, 그것은 중국 사업을 유지하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 안보’를 중시하는 각국의 흐름이 한 나라 안의 자립 경제(autarky)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세계 경제는 점점 더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조언은 한국이 소위 자유 진영과 함께 가되, 경제적으로는 더 세련된 정책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경제적으로 관계가 깊은 중국과 러시아를 완전히 내팽개칠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조언이다.

브레머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대만’을 언급한 데 대해서는 “윤 대통령은 중국을 직접 지명하지 않고 대만을 단 한 번 언급했다”며 “최대 무역 상대국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윤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 다자 안보기구에 적극 참여했다”면서도 “이는 북중러 전체 축에 맞서기보다는 북한을 염두에 두고 이뤄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브레머 회장은 특히 “한국이 미국과 폴란드에 대한 판매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제공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이것은 비밀스럽게 마지못해 한 것이고 지금까지 많은 유럽 국가들의 제공 규모보다 훨씬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북한 인권 등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서는 ‘수위 조절’을 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워싱턴 선언, 대선 이후 바뀔 수도”

브레머 회장은 아울러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워싱턴 선언에 포함된 ‘핵 협의 그룹’(NCG)을 두고서는 “나토의 ‘핵 기획 그룹’(NPG)과 유사한 것”이라며 “유럽과 달리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배치를 포함하지는 않지만 잠재적인 군사 비상사태 때 어떻게 미국 핵무기를 사용할 지에 대해 더 명확하게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면서 “한미 군사 동맹의 중요한 신호”라며 “북한에 대한 확장억제를 증가시킬 것”이라고 긍정론을 폈다.

다만 브레머 회장이 우려한 것은 과연 워싱턴 선언이 지속 가능할 것인가다. 그는 “워싱턴 선언은 적어도 내년 대선까지, 아마도 오는 2027년 윤 대통령의 임기까지는 효력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길게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브레머 회장은 “미국의 정책은 내년 대선 이후 다시 바뀔 수 있다”며 미국 내 매파 보수주의자들은 한반도 전술핵 배치를 지지한다는 점을 거론했다. 이를테면 ‘초강경 매파’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아산정책연구원 포럼에서 “우리(미국)와 한국 정부는 주저 없이 전술핵을 사용할 것이라는 점을 북한 김정은 혹은 그의 뒤를 이을 누군가에게 매우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실제 과거 냉전 시절인 1958~1991년 미국 전술핵은 한국에 배치돼 있었다.

이안 브레머 회장은…

△미국 볼티모어 출생 △툴레인대 국제관계학 학사 △스탠퍼드대 정치학 석·박사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최연소 교수 △컬럼비아대 외래교수 △세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미국외교협회 회원 △유라시아그룹 회장(1998년~)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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