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알고보면 터프한 ‘짐승 중의 짐승’ 거북

정지섭 기자 2023. 5.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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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한 땅거북은 200살 넘게 사는 장수족
일부 거북들의 사냥·포식 장면은 맹수 못지 않게 잔혹
/Smithsonian Channel Youtube 악어거북이 자신의 입속으로 접근한 물고기를 향해 막 입을 닫으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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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도마뱀·악어와 함께 파충류 4대 문파를 형성하고 있는 거북은 상대적으로 점잖고, 온순하고, 조용한, 정적인 이미지의 동물입니다. 괴팍한 사냥꾼 늑대거북과 악어거북, 왕성한 먹성의 붉은귀거북, 드센 성질의 자라 등 한 성질 하는 녀석들이 제법 많지만, 땅거북이 갖고 있는 유순한 이미지에 상쇄되곤 하죠. 높은 산봉우리처럼 커다란 등딱지를 이고서 육중한 네 발로 느릿느릿 움직이며 다른 짐승을 잡아먹지 않고 풀을 뜯어먹는 바로 그 땅거북들 말입니다.

코엑스아쿠아리움에 있는 20살 암컷 설가타육지거북의 등을 물로 씻고 있다.

‘거북계의 신사’라고 할 수 있는 이 땅거북들과 뜻깊은 체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대표적인 땅거북 설가타 육지거북의 몸을 씻기고 윤을 내주는 이른바, ‘거북 세신 체험’입니다. 수요동물원의 첫 현장 나들이이기도 했답니다. 오늘 제 ‘고객’이 되어준 설가타 거북을 포함해 땅거북은 전세계에 60종 정도가 알려져있습니다. 알려진대로 사냥을 하지 않는 초식이고, 그 어떤 거북들보다도 등딱지가 위를 향해 솟구쳐 올라와있습니다. 코끼리를 연상시키는 육중한 네 발에는 물갈퀴 대신 단단한 발톱이 자리하고 있죠. 주로 흙먼지가 많은 건조한 지역에서 살다보니 몸색깔은 황토색이나 갈색을 많이 하고 있어요.

코엑스아쿠아리움에 있는 설가타육지거북의 등딱지를 씻긴 뒤 물로 닦고 있다.

설가타 거북은 육지거북계의 최강자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과 맞수 알다브라 코끼리거북에 이어 덩치로 보든 파워로 보든 부동의 ‘넘버 쓰리’입니다. 코엑스아쿠아리움에서는 2017년 3월 번식에도 성공해 지금은 아기 거북 여섯마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요. 오늘 제가 서비스를 맡은 설가타 육지거북은 20살쯤 된 암컷입니다. 이 거북들의 원산지인 중남부 아프리카 기온에 맞춰 설계된 우리로 들어가니 금세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등딱지 곳곳을 물로 씻어줬습니다. 그 다음 윤기와 촉촉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오일을 발라줬고요.

한 생명이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손을 보탰다는 생각에 짧지만 뿌듯했습니다. 이곳에서는 가정의 달을 맞아서 관람객들을 위한 이같은 체험행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여느 거북들처럼 이 거북의 수명도 매우 긴 편이어서 100년 이상 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제 20살을 갓 넘겼으니 80년의 세월이 남아있는 것이죠.문득 이 거북이 생의 황혼녘에 들어섰을 때의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코엑스아쿠아리움에 있는 설가타육지거북을 씻기고 말린 뒤 코코넛오일을 발라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거북 역시 땅거북입니다. 조나단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이셸 코끼리거북인데 올해 191살이 됐습니다. 이 세월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미 공영방송 NPR이 설명을 했는데 이렇습니다. 이 거북이 알껍질을 뚫고 나와 지금에 이르는 동안 영국 국왕은 일곱 차례 바뀌었고, 미국 대통령 40명이 임기를 보냈습니다. 최초의 전화 개통과 마천루 완공, 인간의 달 착륙 등 기념비 적인 사건들이 모두 조나단의 생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거북이의 탄생추정년도인 1832년은 조선 순조 32년입니다. 이 거북은 현재 영국령 세인트 셀레나섬에서 편안한 노후와 여생을 보내고 있는데요. 문제는 이 거북이 정말 노후인지, 여생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Todays Years Old Twitter 세계에서 가장 나이많은 거북이로 알려진 조나단. 1832년생으로 추정된다.

포식자로서의 거북이에 대해서 잠시 얘기를 해볼까요? 우선 늑대거북이 물고기를 사냥하는 유튜브(스미스소니언 채널) 동영상을 한편 보실까요?

앞서 말했지만, 모든 거북들이 온순하지도, 느릿하지도 않습니다. 위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 늑대거북처럼 ‘거북의 탈을 쓴 사냥꾼’도 있습니다. 혓바닥을 실지렁이처럼 놀려서 물고기를 유혹한 뒤 사정거리 안에 도달한 순간 잽싸게 입을 닫으며 살육을 마감합니다. 포식을 앞둔 거북의 무심한 눈과 거북의 턱에 온몸이 으깨져버린 가련한 물고기의 처연한 눈이 먹는자와 먹히는자의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Smithsonian Channel 악어거북이 자신의 입속으로 물고기가 들어오자 입을 확 닫아버린 직후의 모습.

육식거북의 포식장면은 사실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하기도 합니다. 뱀처럼 꾸역꾸역 삼켜버릴만큼의 탄력성있는 입 구조가 아니다보니 우선 입으로 물어 옴짝달싹 못하게 한 뒤 강력한 앞발로 북북 찢어발깁니다. 피식자들은 산채로 신체가 해체되는 끔찍한 경험을 하면서 먹히는 거죠. 그렇다고 이들을 어떻게 비난하겠습니까? 유전자가 물려준 습성에 따라서 원칙대로 신진대사를 하는 것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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