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과 '헤어질 결심'을 했어 [삶과 문화]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인 변호사 역을 맡은 박은빈 배우가 대상을 수상하며 "다름이 아닌 다채로움이 인정받는 세상이 되길"이란 말을 남겼다.
고백하건대 장애인의 부모로서 아이의 장애를 다채로움으로 보기란 정말 어렵다. 나만 해도 겨우 '다름'으로 봐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왜 그럴까. 부모에겐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이 그 어느 것보다 크다. 휠체어로 경사진 길을 가다가 넘어지면 어쩌나. 지하철 열차와 플랫폼 사이에 휠체어 바퀴가 낄 수 있으니 지하철을 혼자 탄다고 하면 걱정이 앞선다. 저상버스에서 '왜 혼자 탔어? 다음번에는 보호자랑 타!'라는 타박을 버스 기사에게 들었다는 아이의 이야기에 한동안 저상버스 기사들의 눈치를 보다가 급기야 '아이에게 버스는 태우지 말까?'하는 생각을 하던 지난날이 생각났다.
그러다 문득 18년 전 조승우 배우를 너무 좋아해서 극장에서만 4번을 보았던 영화 '말아톤'을 다시 꺼내 볼 용기가 났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소아암에 걸리고 결국 장애를 갖게 되면서, 자폐청년 마라토너와 엄마의 이야기인 영화 '말아톤'을 한동안 머리에서 애써 지웠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의 이 부분을 차마 다시 볼 용기가 없었다.
"초원이 잃어버렸지. 동물원에서. 엄마가 손 놔서. 초원이 잃어버렸지." (영화 '말아톤' 중 초원(조승우 분)의 대사)
지하철역 김밥집에서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역에 울리는 미아찾기 방송을 듣고 자폐청년 초원은 일어난다. 승강장에서 평소 좋아하는 동물인 얼룩말 문양 치마를 입은 여성의 엉덩이를 만졌다가 남자 친구에게 얻어맞는 초원. 엄마가 초원을 찾아내고 남자에게 대들자 초원은 "우리 아이에겐 장애가 있어요"를 외친다.
초원의 상처를 치료하던 엄마는 초원이가 어릴 때 동물원에서 자신이 초원이의 손을 놔서 잃어버렸던 과거를 초원이가 그 순간에 기억해 낸 걸 알고 망연자실해진다.
나에게도 한동안 '초원엄마 모먼트'-마음으로 손 놓고 싶던 순간이 있었다. 죄책감은 '아이를 기필코 내가 보호해야겠다'는 반작용이 됐다. 그건 내가 '장애를 무의미하게'란 슬로건의 협동조합을 차리고 아이가 가고 싶은 곳에 휠체어 접근성을 확보하려는 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18년 후 다시 보게 된 영화에서 엄마가 초원이의 손을 잡는다는 건 중의적 의미가 있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기필코 내 보호 안에 있어달라는 의미인 것이다.
영화 마지막, 마라톤에 나가겠다는 초원이를 붙잡고 말리던 엄마는 초원이의 굳은 의지를 보고 손을 놔준다. 이 장면을 보며 지난해 가을 어느 날 아이가 '부산에 2박 3일 혼자 여행하겠다'며 이야기하던 때가 겹쳐 보였다. 휠체어로 혼자 캐리어는 어떻게 끌지? 혼자 화장실은 어떻게 가고 어떻게 씻지? 물음표가 100개 정도 떠오르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마지못해 아이 손을 놓아줬다.
손을 놓은 결과는 값졌다. 아이는 얼마간의 고생을 했지만 혼자 여행을 무사히 다녀왔다. 아이는 점점 더 내 손을 잡는 일이 적어지고 있다. 지난달 휠체어 탄 언니들이 30명 넘는 만남의 자리를 아이에게 마련해 주었다. 이 자리에서 아이는 비로소 특별하지도, 다르지도 않은, 진짜 '다채로움'이 되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고루 섞인 이 행사장에서 엄마인 나는 드디어 보호의 강박에서, 한때 손을 놓으려 했다는 죄책감의 굴레에서 비로소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손을 놓는 건 예전의 그 '손 놓음'과는 다르며,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나뿐이 아닐 것이다. 장애를 가진 자녀의 손을 놓쳤던, 잠시 손을 놓았다가 다시 잡은, 언젠가 손을 놓아줄 수 있는 세상을 기원하고 열망하는 이 세상 모든 부모님, 가족, 지원인들에게 응원을 전한다. 헤어질 결심을 하는 건 보호하려는 결심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니까.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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