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작가들, 15년 만에 ‘파업’
TV 시리즈 작가의 절반이 최저임금 수준의 원고료 받아
에피소드 압축하는 OTT 시리즈물에선 ‘로열티’도 없어
챗GPT 같은 AI와도 경쟁…제작사들은 임금 인상에 난색
미국 할리우드 작가 9000여명이 2일(현지시간)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2007~2008년 저작권료 인상을 요구하며 100일 동안 파업을 벌인 지 15년 만이다. 미국작가조합(WGA)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가 열리면서 제작 환경이 악화됐고, 저임금 노동도 늘었다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영화·TV 작가 노동조합인 WGA는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 디즈니 등이 소속된 영화제작자동맹(AMPTP)과 지난 6주 동안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계약이 만료되는 1일 자정 이후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WGA 소속 작가들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있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2일 오후 거리시위에 나설 예정이다.
파업의 배경에는 OTT 호황이 자리하고 있다. OTT들의 스트리밍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제작 시즌이 짧아졌고, 작가들은 숨 돌릴 틈 없이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게 됐다. 하지만 도리어 수입은 줄었다고 WGA는 전했다.
전통적인 미국 네트워크 TV 시리즈는 한 시즌에 약 22개 에피소드로 제작됐다.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이 타 방송국이나 해외, DVD 등으로 재판매될 때마다 감독, 작가 등 창작자들은 재상영분배금과 같은 로열티를 지급받았다. 하지만 OTT 시리즈물은 보통 한 시즌에 8~10회로 제작되며 작가들에게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는다. WGA는 회차가 줄면서 작가들이 에피소드를 압축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투자해야 하지만, 수입은 대폭 줄었다고 설명했다.
WGA 통계에 따르면, 현재 TV 시리즈 작가의 절반(49%)은 최저임금 수준의 원고료를 받고 있다. 2013~2014년 최저임금을 받은 작가 비율은 전체의 3분의 1수준이었다. 인기 작가들의 벌이도 줄었다. 메인 작가들의 평균 연봉도 10년 전보다 4% 하락했다.
변화한 제작 환경도 작가들의 생계를 어렵게 만들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제작 스튜디오들이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작가 수를 줄이고, 보다 신속하게 대본을 만들 수 있는 소규모 그룹인 ‘미니룸’을 조직해 운영한다고 전했다. 신인 작가들이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과거보다 적어졌고, 미니룸에 속한 작가들은 더 적은 보수를 받게 됐다고 NYT는 지적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도 작가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최근 제작사들은 AI가 만든 초안 스크립트를 수정하는 업무를 작가들에게 요청하고 있다. 작가들은 AI가 작가들의 이전 작품을 활용해 원고를 작성하는 것을 막을 안전장치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7일 실시된 파업 찬반 투표에서 WGA 소속 작가들은 97.85%의 압도적 찬성률을 보였다. NYT는 작가들이 실제 파업에 들어갈 경우 <새러데이 나이트> <지미 팰런 쇼> 등 팀제로 운영되는 심야 토크쇼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이어 낮 시간대 연속극에 여파가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영화나 TV 시리즈는 이미 제작이 진행된 것들이 많아 당장 차질을 빚지는 않지만,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07년 원고료 인상을 요구하며 벌인 WGA의 파업은 100일 동안 이어진 바 있다. 특히 가을 시즌 방영되는 TV 프로그램들의 제작을 위한 대본 집필이 통상 5∼6월쯤 시작된다는 점에서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올가을 새로운 작품 공개가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할리우드 작가들의 파업은 할리우드 세트제작 업체와 의상제작실 등 관련 업계에 연쇄적인 파급 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2007년 파업으로 당시 로스앤젤레스는 21억달러(약 2조7665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제작사들은 경영난을 이유로 임금 인상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최근 7000여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힌 디즈니를 비롯해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도 수천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NBC유니버설도 광고시장 위축 등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WGA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업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축해 콘텐츠를 마구 공급하며 스스로 위기를 만들고, 이를 다시 해결하기 위해 창작자들을 쥐어짜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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