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분양 피해자들 “입주도 못해보고 8개월간 월세 전전”
‘건축왕’이 건물주, 미분양 전세 모집 후 자금난에 공사 중단
신탁사로 넘어가며 100여명 40억 떼일 판…특별법 대상 제외
2일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의 비좁은 골목길 안쪽에 있는 20층짜리 A아파트 앞. 골목길에 있는 인근 단독주택 담벼락엔 ‘XX건설 즉각 중단하라’는 붉은색 글씨가 커다랗게 쓰여 있다. A아파트는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단’의 주범으로 구속기소된 이른바 ‘건축왕’ 남모씨(61)가 건축주로 지난해 4월 공사가 중단됐다.
이후 A아파트는 신탁사와 은행 등에 넘어가 현재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공정률은 90%에 이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남씨와 계약했던 100여명은 총 40여억원의 전세보증금을 떼일 처지에 놓였다. 특히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대상도 안 되는 등 정부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미추홀구에 따르면 남씨가 대표로 있는 건설사는 단독주택 16채를 사들여 헐고 지하 2층, 지상 20층 규모로 194가구가 입주할 주상복합건물인 A아파트를 짓겠다며 2018년 12월 공사를 시작했다. 당초 지난해 4월 입주 예정이었다.
그러나 분양이 안 되자 2021년 말 입주자 모집 당시 ‘2년 전세로 살다가 맘에 들면 계속 살고, 그렇지 않다면 전세보증금 전액을 돌려주겠다. 분양 전환 때 우선권을 주겠다’는 파격적 조건을 내세웠다. 또 ‘전세보증금 10% 이외 90%에 대해선 전세대출이 가능하고, 전세반환보증보험도 가입돼 보증금도 전액 보장된다’고 홍보했다.
지난해 8월 결혼한 B씨(36)는 이를 믿고 2021년 11월 3600만원에 A아파트를 계약했다. 원룸에 혼자 살던 B씨는 결혼자금으로 계약금을 치렀지만 해당 건설사는 ‘자금난’으로 공사를 중단했고 입주는 무산됐다. 그는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해 8개월간 월세를 전전하다 다시 원룸으로 이사했다.
C씨(43)도 전세보증금 10%만 내면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는 말만 믿고 3600만원에 계약했다가 떼일 판이다.
C씨는 피해규모에 대해서도 전했다. C씨는 “A아파트 전세계약 피해자는 100여명으로, 아파트 가격 3억4000만~4억원의 10%를 계약금으로 냈다”며 “피해자 중에는 공인중개사도 있고, 어느 노부부는 전액을 주고 분양받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공사 중단 후 건설사는 파산했고 현재 신탁사와 은행이 건설비를 투입해 A아파트를 짓고 있다. 조만간 준공되면 오피스텔과 아파트를 일반에 분양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들은 계약금을 전혀 돌려받지 못한다.
특히 전세분양 계약자들은 A아파트 건축주가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단’의 주범인 ‘건축왕’ 남씨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최근 남씨에게 피해를 당한 전세사기 피해 청년 3명이 잇따라 숨지는 등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이 전국적 이슈가 되면서다.
이 아파트 전세분양 피해자 연대는 “자금난으로 공사가 늦어진 줄로만 알았지, A아파트가 건축왕 남씨와 관련있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남씨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은 막막하다. 민사소송에서 이겨도 남씨의 재산을 파악하고, 압류하고, 집행하는 데 얼마가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아파트 등기가 없어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해 전세사기 주택의 경매나 공매 때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주거나, 주택 매수를 원하지 않으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해 공공임대로 살 수 있도록 하는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의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특별법 지원 대상 6개 요건 중 등기가 없어 대항력을 갖추기 힘들고, 집값도 3억원 이상으로 해당 사항이 안 된다. 남씨에게 전세분양 사기를 당해 아파트에 입주도 못한 채 계약금만 떼이게 된 것이다.
A아파트 전세분양 피해자 연대는 “A아파트 계약자들이 남씨에게 사기당한 것은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와 마찬가지”라며 “정부가 A아파트 피해자에게도 구제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추홀구 관계자는 “A아파트를 짓는 신탁사와 은행에도 일반 분양을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피해자들에게 계약금을 돌려줄 수 있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철 기자 terry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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