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칠수록 ‘피해자’ 된다…‘전세사기 입증’ 안간힘
소규모 피해 임차인들 지원 사각
SNS서 ‘같은 임대인 찾기’ 나서
경찰은 신고 몰리며 업무마비도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A씨는 지난달 27일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대책 발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단체대화방 등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자신과 같은 임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을 모으고 있다.
그는 현재까지 자신과 동일한 임대인과 계약한 임차인 12명을 모았지만 피해규모가 작은 것 같아 걱정이 많다. A씨는 “피해자가 100명, 200명씩 되는 건도 부지기수라 이 정도 규모는 경찰서에 (사건을) 가져가봤자 접수도 안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집주인이 잠적하고 연락이 안 되면 이 자체가 전세사기지, 도대체 뭘 더 증명하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일 부동산 업계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따르면 ‘빌라왕’ ‘건축왕’ 등 이미 이름이 알려진 전세사기 외에 정부가 전세사기 사건으로 분류하지 않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같은 임대인 찾기’에 나서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처럼 한 동 전체가 피해자인 경우가 아닌 소규모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경우 집단화가 어려워 피해지역과 임대인 이름의 초성을 단톡방 등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같은 피해자를 모으고 있다. 예컨대 ‘강서구 ㄱ ㅇ ㅎ’으로 임대인을 찾는 식이다. 임대인의 실명을 쓰지 않는 이유는 실명을 단톡방에 공유할 경우 자칫 명예훼손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대책을 발표하면서 전제조건으로 정부가 제시한 6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중 두 가지가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것’ ‘수사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돼야 할 것’으로, 이 조건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일부 피해자 중에는 경찰에서 먼저 연락이 와 자신이 전세사기 피해자란 사실을 인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피해자가 먼저 나서야 하는 경우에는 입증도 어렵다. 이 때문에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그나마 같은 임대인을 중심으로 피해자들이 뭉치면 상대적으로 사건 접수가 수월하고, 정부가 제시한 ‘피해자성’ 인정도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피해자성’ 입증을 위해 고소를 이어가면서 경찰 업무도 과중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연일 몰리는 전세사기 피해신고 처리에 다른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들어 다른 업무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세사기 관련 사건 접수가 늘었다”면서 “최대한 (고소장이 제출된) 모든 사건을 들여다보고, 기존에 접수된 사건 가운데 동일인(임대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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