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예능의 윤리
나만 옳다고 고집하면 반발을 산다. 상대방의 생각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도덕적으로 ‘멸균된 세상’을 지향하면 자칫 다양성과 창의성을 잃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문화콘텐츠의 옳고 그름에 대해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하나의 원칙만은 지켜져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도구화하는 콘텐츠는 용납돼선 안 된다.
넷플릭스 예능 <성+인물: 일본편>이 논란이다. ‘섹드립’(야한 농담)의 달인 신동엽과 통역을 맡은 가수 성시경이 ‘성(性)진국’ 일본 AV(성인영화) 배우들을 인터뷰하고, 직접 성인용품점을 둘러보는 ‘19금’ 콘텐츠다. 문제는 성 산업을 오락적 관점에서만 다룬다는 점이다. 일본 AV산업은 사회 경험 없는 20대 전후 여성들에게 ‘연예인이 될 수 있다’며 사기 계약한 뒤 출연을 강제하는 인권침해 문제가 10년 전부터 제기돼왔다. 지난해 ‘AV 출연피해방지 구제법’이 제정됐을 정도로 성 착취가 심각하다. 하지만 일본의 이런 현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성+인물>은 여배우들의 직업 선택이 자발적이었다고 강조한다. 가혹한 성행위를 강요받고 고통받아도 연기의 일부로 여기고 소비되는 문제도 외면한다.
신동엽은 "여배우 말로는 AV를 많이 봐서 (일본) 성범죄율이 낮다고 하더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성범죄를 ‘당한 쪽 책임’으로 돌리는 차별적 문화 때문에 신고를 안 해 빚어진 통계 착시라는 지적이 많다. 논란이 커지자 제작진은 2일 “일본 편의점과 맞먹는 규모의 AV산업에서 암(暗)이 없을 수 없다”면서도 “해외여행 프로그램에서 현지에 대한 문제점을 다루지 않는다면 예능 장르에서 동의받을 수 있는 비판인가”라고 되물었다.
제작진에 되묻고 싶다. 아무리 가벼운 예능프로그램이더라도 한 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도 세상 경험이 적은 젊은 세대에겐 더 클 수 있다. ‘양심냉장고’나 ‘느낌표!’ 같은 공익 예능을 바라는 게 아니다. 최소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내가 만드는 콘텐츠의 시청률이나 수익만큼이나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자극적인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둔감해지고, 우리는 불현듯 길을 잃고 있는 것 같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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