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人] 들꽃, 물감이 되다…꽃누르미 작가 박진옥
[KBS 창원] [앵커]
눌러서 말린 생화를 공예에 접목한 압화 '꽃누르미'를 아십니까?
꽃잎이나 나뭇잎을 바른 창호지로 생활 속에서 자연을 즐기던 선조의 멋이 예술로 재탄생했습니다.
꽃누르미 명장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이무렵 산과 들에 흐드러진 씀바귀가 그림이 되는 순간. 박진옥 작가에겐 흔한 들꽃이 물감이 됩니다.
["꽃잎이 떨어져 있어도 꽃이고 병들어 있어도 꽃이고 그 모습 그대로 그냥 꽃이니까 좋은 거죠. 항상 좋아요."]
꽃에 진심을 담아 작가는 자연의 색을 세상에 전합니다.
사철 넉넉한 자연이 좋아 밀양에 정착한 박진옥 씨에게 봄은 가장 바쁜 계절입니다.
산과 들에 다투어 피는 모든 꽃들이 작품 재료가 되기 때문이죠.
꾸밈없는 자연의 색을 오래 두고 즐기려면 손이 많이 가는 수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박진옥/꽃누르미 작가 : "이건 할미꽃, 할미꽃 홀씨. 이제 마지막이 돼서 제가 눌렀고 이건 장미매발톱. 얇은 꽃은 가볍게 책 한두 권, 또 두꺼운 꽃은 돌 5㎏, 10㎏ 되는 것으로 누를 때도 있고 그래요. 이건 제가 길거리 가다가 씀바귀가 보이기에..."]
섬세하게 손질한 생화는 매트를 갈아가며 수분을 제거하고 변색이 잘되는 흰 꽃은 물올림 작업으로 물들인 뒤 일일이 꽃송이를 분리해 말립니다.
나무에서 채취한 꽃은 물론 작은 들꽃, 나뭇잎과 나무껍질도 물감처럼 두루 활용하는데요.
올해 채취한 수양벚꽃으로 밤 벚꽃 풍경을 표현하는 중입니다.
["풀이 화학제품이기 때문에 (꽃 색깔이) 변해서 그걸 안 해요. 그냥 이대로 해서 눌렀을 때 딱 자리를 잡아서..."]
진공기법으로 공기를 뺀 전통 꽃누르미는 시간이 지나도 꽃 모양과 색이 그대롭니다.
꽃과 나무, 들풀을 물감 삼아 묘사한 풍경화는 생생한 자연을 대하듯 사실적입니다.
[박진옥/꽃누르미 작가 : "이 40가지 정도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모여서 이렇게 그림이 되어 있을 때 훨씬 더 애정이 가는 것 같아요."]
지고 나면 보기 힘든 꽃을 그림으로, 영원한 작품으로 만나는 관람객들은 꽃누르미가 그저 신기합니다.
[화정스님/대구 대원사 주지 : "민들레 홀씨는 바람만 불어도 날아가고 얘들을 꺾으려고 잡아도 날아가 버리고 다 터져버리는데 어떻게 그대로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잡았는지 신기합니다."]
[이선혜/청도군 이서면 : "꽃잎을 일일이 말려서 작품을 완성했다는 게 너무 놀랍습니다. 나무껍질 하나하나 섬세함이 살아있는 게 감동이에요 정말."]
꽃을 재발견하는 시간. 생활 공예로 꽃누르미를 체험할 수 있게 공방의 문턱을 낮췄습니다.
[심창섭/밀양시 상동면 : "죽어 있는 꽃에 생명을 불어넣는 그런 작업이고 하나의 예술이기 때문에 우리 문화를 살리는 차원에서도 꼭 보존돼야 하고..."]
박진옥 작가는 청각장애인들의 자활을 돕는 재능기부로 처음 꽃누르미를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세공을 배워 액세서리로 가공하고 실용성과 멋을 겸비한 생활용품도 만들면서 다양한 공예작품도 내놓았는데요.
꽃누르미 기술을 가르치는 작업도 열심입니다.
[김희자/밀양시 무안면 : "자연의 아름다움을 꽃누름으로 해서 한지에 쫙 한번 표현해보고 싶어서 배우게 됐습니다."]
키 작은 들꽃 앞에서 작가는 한껏 자세를 낮춥니다.
["벌레 먹어서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것들, 이런 것들을 전부 다 모아서 작품을 우리 함께 어울리는 삶이라는 제목 아래 그런 작품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상처 난 꽃들을 모아 더불어 사는 고운 세상을 전하고 싶은 작가에게 꽃누르미는 행복한 나눔입니다.
KBS 지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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