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바깥길] 질기고도 신성한 밥줄
이상헌 |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4월1일은 만우절이고, 5월1일은 노동절이다. 둘 사이에는 엄연하게 한달 차이가 있지만, 가끔 나는 노동절이 만우절 같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137년 전, 미국에서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했던 시위가 기점이 돼 전세계적으로 이날을 기억하려 했던 것이 노동절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나서서 이날을 기념하자 ‘원조’ 국가인 미국은 아예 노동절 날짜를 바꿔버렸다. 그래서 미국 노동자들에게 ‘원조’ 노동절은 노동하는 날이다. 대신 족보 없는 9월 어느 날 노동을 쉰다. 물론 쉴 수 있는 사람만 쉰다. 게다가 5월1일에 노동절을 기념하는 나라는 많지만, 8시간 노동은 여전히 소식도 없다. 매년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여덟시간아, 어디 있니” 하며 집 나간 아이를 찾고 있다. 그러니, 노동절은 거짓과 가짜가 넘치는, 그 자체로 웃기는 만우절이다.
그래서 오월 첫날 나는 웃음기 하나 없는 세상의 밥줄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희미한 기억이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내 주위에 있었던 밥줄의 노동을 떠올린다. 내가 기대어왔던 노동이다. 그 시작은 겨울날 새벽 소죽을 끓이던 외할아버지다. 온통 깜깜할 때, 할아버지는 서둘러 솥에 물을 붓고 볏짚을 넣은 뒤 불을 지폈다. 제법 그럴듯한 집에 태어나 한학자가 될 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세파에 뺨을 맞고 고단한 농사를 밥줄로 삼았다. 소가 있어야 농사가 되니, 소를 돌보는 게 하루 첫 일이었다. 거대한 솥뚜껑을 열어 볏짚을 휘저으면 끓는 물은 새하얀 연기를 뿜어냈다. 할아버지 입에서도 터질 듯한 입김이 나왔다.
거친 농사일에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는지, 밤만 되면 할아버지는 성균관에서 나오는 책을 뒤적이거나 시조를 읊었다. “청산리 벽계수야”를 “처엉 산리이 비이 게에 수이야~”라며 길게 뽑아내 노래했으니, 시조 하나 마무리에 10여분이 걸렸다. 할머니는 얼른 돌아누웠다. 할아버지의 노동은 피할 수 없는 밥줄이었고 평생의 불화였다. 그 불만의 불덩어리는 오롯이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불만까지 끌어안고 죽는 날까지 보살핀 할머니는 자신의 노동과 고통 또한 끝까지 홀로 껴안고 갔다.(또는 가야 했다.) 밥줄의 최후의 보루는 사실 할머니였다. 이제 두분은 햇살 좋은 곳에 나란히 묻혀 있다. 할머니는 여전히 등지고 누워 있을까.
아버지 세대는 서둘러 농촌을 떠났다. 나의 아버지는 아예 바다로 나갔다. 논일과 밭일에다, 민둥산으로 땔감 구하러 가는 일은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바다도 만만치 않았다. 뱃일이 밥줄이었지만, 바다를 떠나는 날만 꿈꾸었다. 미친 듯한 파도에 배가 뒤집혀 겨우 살아난 뒤에는 그 꿈이 더 절박해졌다. 결국 땅으로 돌아왔으나, 땅에도 파도가 넘실댄다는 것을 알았다. 어찌어찌하여, 항구에 정박한 배에 짐을 싣고 살피는 일을 했다. 바다도 땅도 아닌, 경계에서 일했다. 하지만 거기서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그마저도 오래 하지 못했다. 바다에서도, 땅에서도, 그 경계에서도 아버지의 밥줄은 흔들리기만 했다. 아버지의 밥줄이 약해지자 밥줄은 어머니에게로 옮겨 갔다. 밥줄의 삼투압이다. “내가 젊어서 일하다 골병이 들었다”는 아버지는 이제 많이 아프고, 어머니가 그 아픔을 홀로 보살핀다. 저렇게 버티다가, 어머니도 등지고 돌아누울까 조마조마하다.
밥줄의 비대칭성도 생각한다. 내 밥줄은 고귀하나 너의 밥줄은 미천하고, 내 밥줄을 위한 싸움은 신성하지만 너의 밥줄 ‘투쟁’은 몰상식하고 이기적이라는 것. 그래서 타인의 밥줄에 쉽사리 무관심하다. 몇년 전 누드모델을 밥줄로 삼은 사람 인터뷰를 읽었다. 나는 몸매 좋은 사람이 모델 하는 줄 알았다. 아니란다. 몸으로 최선의 포즈를 취할 줄 알아야 하고, 인간성이 좋아야 하며, 사람들과 관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몰랐다. 그렇게 사람에게 공을 들여도 “할 일이 없어서 누드모델을 하느냐”는 말을 쌍욕과 함께 듣기 십상이란다.
남의 밥줄을 대충 아는 척하기도 한다. 내가 일하면서 부끄러웠던 기억은 뒷산 벌판에 흐드러지게 핀 민들레만큼이나 많지만, 탄자니아 설문조사 경험은 유난히 아프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대규모 설문조사를 했다. 꼼꼼하게 확인하려다 보니 설문지가 길어졌다. 답변에 적어도 30분은 필요했던 설문지에서 가장 중요한 문항은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였다. 답변을 돕기 위해 임금, 노동시간, 산업재해, 차별, 폭력 등등을 보기로 제시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응답자가 ‘기타’를 택했다. 그게 도대체 뭐냐고 물었더니, 한결같이 화장실의 설치와 자유로운 이용을 꼽았다. 밥줄은 질기고도 구체적인데, 나는 호텔 방과 사무실을 오가면서 화장실 물 내리는 것도 잊으며 설문지의 내적 정합성만 따지고 있었다.
밥줄이란 ‘밥’을 위해 나의 수고스러운 노동을 내어놓는 것이다. 달리 밥‘줄’이겠나. 그 덕분에 기업은 돈을 벌고 소비자는 필요한 것을 얻는다. 하지만 그 노동을 전유했다고 해서 그 노동의 영혼까지 전유할 권리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은 전유됐으나 모든 삶은 존엄하다. 그 삶이 공장에 있든 사무실에 있든 백화점에 있든 배달 오토바이에 있든, 밥줄의 삶은 태초의 빛처럼 변함없이 신성하다.
몇년 전 알게 된 얘기다. 어느 중증장애 여성이 경제적 자립을 위해 어렵게 영문학을 공부했다. 장애라는 걸림돌을 더 큰 배움으로 극복하려 한 것이다. 덕분에 면접 기회는 자주 있었다. 하지만 면접은 지원자의 능력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바탕 훈계하는 자리였다. “부모님은 이런 중증장애 딸에게 재산도 물려주지 않고 뭘 했느냐?” “이런 중증장애인, 그것도 여성이 꼭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느냐?” “부모 복을 잘못 타고났으니 남편이라도 잘 만날 수 있도록 사람들이나 많이 사귀어봐라! 이 험난한 취업난에 뛰어들지 말고.”(여성노동자글쓰기 모임, <기록되지 않은 노동>) 밥줄을 쥐고 있다고 해서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뺏어 갈 권리는 없다.
그러니, 노동절에는 질기고도 신성한 밥줄을 생각하자. 노동절 길거리를 가득 채우는 함성이 한번도 가닿지 않은 할머니의 노동과 어머니의 노동. 온전히 드러내고 있음에도 애써 보지 않아 드러나지 않는 노동, 너무 한가운데 있어서 보이지 않는 노동. 밥줄이라 부르지만, 그 ‘줄’에 매달려 힘겹고 아픈 시간을 견디어내는 사람들. 오월 첫날은 이 거대한 밥줄을 기억하고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로의 밥줄을 도닥여주는 날이면 좋겠다. 애써 거짓을 만들어내는 만우절인 양, 우리 같이 거짓다짐이라도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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