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도박” 신고에 야산에 길 뚫고 공동묘지서 작전회의
“다섯, 넷, 셋, 둘, 하나 그만~ 마감합니다.”
지난달 24일 밤 11시20분 충남 아산시 송악면 한 야산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다. 5분여 뒤 다시 숫자를 세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시다.” 김경환 충남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장이 잠복해 있던 검거조에 출동을 지시했다. 강력범죄수사대 30명, 마약범죄수사대 10명, 기동대 30명 등 70명으로 꾸려진 검거조는 플래시도 못켠 채 앞사람 옷자락을 붙잡고 30분 넘게 이동했다. 도박장 앞 공동묘지에서 최종 작전회의를 했다. “강수대는 앞·뒤 출입문으로 진입하고, 기동대는 도박 텐트 주변 확실히 차단해. 사람들 밖으로 못 가게 하고, 무엇 보다 사고 조심.”
40분 뒤인 25일 새벽 0시 경찰이 급습하자 도박장은 혼란에 빠졌다. 운영자들은 달아나려고 뛰어다녔고, 도박판 참가자들은 돈을 버리고 “놀러 왔다”, “나는 아니다”라며 경찰에 놓아 달라고 애원했다.
현장을 진정시킨 경찰은 운영자·도박참가자들에게 ‘도박 혐의 등으로 현행범 체포한다’고 고지했다. 이어 경찰은 운영총책인 창고장 ㅇ씨(44), 화투도박을 하는 찍새(선수), 도박장소 선정책(상치기), 도박자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꽁지) 등 도박장 운영진 6명과 도박참가자 50명 등 모두 56명을 도박장 개장 및 상습도박 등 혐의로 입건했다. 또 경찰은 현장에서 도박자금 1억2200만원과 계수기, 화투, 무전기 등을 압수하고 달아난 감시조(문방) 4명, 자금을 관리하고 도박도 하는 총책 등 모두 5명을 수배했다. ㅇ씨 등 3명은 지난 27일 구속됐다.
충남경찰청은 2일 이 사건 관련 브리핑을 열어 도박 참가자들은 찍새 등 도박장 운영진 3명이 화투도박인 ‘도리짓고땡’을 하면 이들의 패에 돈을 거는 수법으로 이날만 1억2200만원의 판돈을 걸고 25회에 걸쳐 도박했다고 밝혔다. 산속에서 들린 숫자 세는 남성 목소리는 창고장이 도박참가자들에게 판돈 거는 마감 시간을 알리는 것이었다. 창고장은 도박판마다 판돈의 10%를 수수료로 챙겼다. 경찰은 창고장이 이날 챙긴 6000만원에 대해 기소전 몰수보전을 신청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들이 지난 3월초부터 당진, 아산, 예산, 서산 일대 야산 10곳에서 30~40일 동안 같은 수법으로 최소 수백회에 걸쳐 도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ㅇ씨 등은 단속을 피하려고 심야시간대 인가가 없는 야산에 대형 텐트를 치는 방식으로 도박장을 개설하고 평소 관리해온 도박참가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제3의 장소로 오게 했다. 신원 확인 등을 거친 이들은 승합차를 타고 도박장으로 이동해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경찰은 이날 새벽 3시40분께 까지 현장에서 1차 조사를 하고 이들을 충남경찰청으로 압송했다.
경찰이 검거하기 어렵다는 산도박장 일당을 일망타진한 것은 두 달 동안 도박장 운영자들의 행적을 치밀하게 추적해 이들의 움직임을 예측한 덕분이었다. 지난달 말 경찰은 이들이 최근 도박장을 열지 않았고 그동안의 이동 경로에서 당진이 빠져 있는 점에 주목했다. 당진에서 도박장을 개설할 때가 됐다고 예상한 경찰은 이들이 과거에 도박장을 열었던 송산면의 한 야산을 지목하고 그 뒷산을 매복장소로 정했다. 경찰이 예상한 도박장 개설일은 지난달 25~27일, 앞서 경찰은 매복지에서 도박장까지 산길을 뚫어 일당들의 감시를 피했다.
김경환 충남경찰청 강수대장은 “2월 말에 ‘아내가 도박한다’는 한 남편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두 달 동안 도박장으로 이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야산 주변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50대를 분석해 영상이 겹치는 차량을 조회한 끝에 ㅇ씨 등의 인적을 확인하고 도박장 현장도 찾아 증거를 모았다”고 밝혔다. 그는 “도박참가자 50명 가운데 40~60대 가정주부가 절반 이상이었고 42명은 이전에 도박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며 “총책 ㅇ씨가 충남지역 폭력조직원으로 확인됐다. 다른 도박장 운영진이 폭력조직원인지, 수익금이 조직 운영자금으로 쓰였는지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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