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사내 성폭력’ 항소심…“회사는 여전히 개인 일탈 취급”

1심 이후 10개월 만에 재판 열려
업무관련성·징계적절성 등 쟁점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와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2020년 11월 서울 중구 소공동 한진칼 앞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에게 사내 성폭력 사건의 직접 해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밝혀진 것은 수용하고 전환점으로 삼아 나은 회사가 되는 게 바람직한데 회사는 사업주 책임이 아닌 개인의 문제, 개인의 일탈이라고 말하니까요.”

대한항공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성폭력 피해자 ㄱ씨가 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0-2부(재판장 김동현)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재판이 끝난 뒤 말했다. 항소심은 1심 판결이 나온 후 약 10개월 만에 열렸다.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던 지난 2017년 ㄱ씨는 직장 상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공항 보안사고와 관련해 팀장인 ㄴ씨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2019년 12월 가해자 ㄴ씨의 성폭력과 2차 가해 등 직장 내 성폭력을 조사해달라고 대한항공에 요구했지만 회사는 별도의 조사나 징계 없이 ㄴ씨를 ‘사직 처리’했다. ㄱ씨는 2020년 7월 성범죄 방지에 주의 의무와 관리·감독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대한항공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 7월 1심은 “성범죄 방지에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대한항공이 1500만원을, ㄴ씨가 3500만원을 각각 ㄱ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ㄴ씨를 징계하지 않고 사건을 끝낸 것에 대한 대한항공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ㄱ씨는 다녀야할 회사를 상대로 계속 소송하는 것이 어려워 항소를 포기할 뜻을 밝혔지만, 대항항공은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에서는 가해자 ㄴ씨의 성폭력 행위가 업무와 관련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대한항공 쪽 대리인은 성폭력 사건 당시 ㄴ씨가 휴직 중이었던 점을 지적하며, “공항보안 사고를 알면 안 되는 상황”이라거나 “(사건 당일) 누가 먼저 연락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한 달 휴직인데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몰라도 된다는 건 무리한 주장이 아니냐”며 “상사인데 누가 먼저 연락한 것이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이 ㄴ씨를 사직 처리한 것과 관련해서는 남녀고용평등법상 징계가 이뤄져야 하는지, 취업규칙의 효력이 구속력이 있는지 등을 따져볼 작정이라고 했다. 다음 재판은 6월20일 오전 10시30분에 열린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