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폭' 따라쓰기 언론은 건설노동자 죽음 책임 없나
강원건설지부 양아무개 지대장 사망에 정부 규탄 성명 쏟아져
"언론이 정권의 노조탄압 기조에 복무, 여론몰이 일조했다"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건설노조를 겨냥한 정부 탄압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분신한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강원건설지부 양아무개 지대장이 2일 오후 1시께 끝내 숨졌다. 윤석열 정권의 노조탄압을 규탄하는 노동조합 성명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언론이 정권의 노조탄압 기조에 복무했다”는 거센 비판도 제기됐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은 강원건설지부 간부 양아무개 지대장이 2일 오후 1시9분경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양 지대장은 노동절인 지난 1일 오전 9시35분께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양 지대장은 이날 오후 3시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양 지대장은 이날 분신 시도에 앞서 건설노조 간부들의 단톡방에 남긴 글에서 “정당한 노조 활동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네요”라고 썼다.
양 지대장은 건설 현장에서 조합원 채용과 노조 전임비 지급을 강요했다는 혐의(공동공갈)로 지난 2월부터 수사를 받아왔다. 검찰은 이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지난 3월 초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를 압수수색했고 양 지대장을 포함한 지부 간부들을 수 차례 소환조사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건설노조의 활동을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로 규정하고 전방위 압박을 펼쳐왔다. 경찰은 1계급 특진을 내걸고 건설노조를 겨냥한 기획수사를 벌였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도 노조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월례비52시간 준수위험작업 거부채용요구 등을 문제 삼고 조사에 나섰다. 정부가 건설노조에 대한 전례 없는 탄압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검찰과 경찰은 건설노조에 13회 압수수색을 벌였고 950여 명을 소환조사했으며 15명을 구속했다.
언론은 이 과정에서 건설노조를 불법으로 규정하거나 폭력성을 부각하는 정부측 주장을 확산했다. 정부과 수사기관의 일방 입장을 받아쓰면서 채용요구나 노조 전임비 요구 등 노사 단협에 따른 노조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건설노조와 무관한 사건을 '조폭'과 연관 짓기도 했다. 이 같은 보도는 소수 극우 언론이 아니라 언론노조에 가입한 사업장을 포함한 언론 전반에서 쏟아졌다는 지적이다.
양 지대장이 숨지기 전인 2일 오전 11시 건설노조는 양 지대장이 입원한 서울 여의도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긴급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건설노조 탄압이 건설노동자 분신을 불렀다”고 규탄했다. 민주노총 선전실에 따르면, 양 지대장의 동료인 김현웅 강원건설지부 사무국장은 “(양 지대장이 영장에 적시된) 공갈이라는 글자만이라도 빠졌으면 좋겠다, 정당하게 노동조합으로 교섭 요구하고 안전을 위해 현장의 불법행위를 없애자고 얘기한 것을 공갈범으로 몰아가느냐고 얘기했었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산하 가맹조직, 지역본부는 성명을 내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한편 윤석열 정부의 사죄와 노동탄압 중단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2일 양 지대장이 숨진 뒤 낸 성명에서 “지난 1년간 자신의 무능과 실정을 덮기 위해 한 것이라곤 노조탄압 밖에 없던 윤석열 정부가 끝내 동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동지의 주검 앞에 사죄하라”고 했다. 이어 “민주노총은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고, 윤석열 정부 심판으로 동지 앞에 추모의 예를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는 성명에서 “오늘 영면한 강원건설노동자 죽음의 책임은 윤석열 정권에 있음이 명백하다”며 “이 시간 이후로 살인 정권,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위해 총력을 다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1일 낸 성명에서 “윤석열 정권은 노동조합을 '적'으로 규정하고 탄압을 일삼았다. 안전한 일터와 생존권 보장을 위한 노조 활동에 '부패'를 덧씌웠다”며 “자본이 장악한 언론은 정권 기조에 복무했다”고 했다. “지지율 반등을 타고 노린 공안 탄압은 시대의 회귀를 불렀다”며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긴 노동자에게 분신이란 선택지만 남기게 한 것은 과연 누구인가”라고 되물었다.
언론노조는 2일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권의 무도한 노동탄압과 보수 재벌언론의 노조 혐오 여론몰이가 한 건설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언론은) 현장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에게 최소한의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국토부와 검경, 건설자본이 쏟아내는 입장만을 전하며 노조 혐오를 확산시켰다”고 했다. 언론노조는 “윤석열 대통령은 고인과 유족 앞에 사죄하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즉각 파면하라. 노조탄압, 노동개악 당장 중단하라”고 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사람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나라, 검경이 동원된 압수수색과 연행, 구속영장 청구가 일상처럼 이뤄지는 나라가 윤석열 대통령이 통치하는 대한민국”이라며 “이번 사태의 책임자 처벌과 노동탄압 즉각 중단을 촉구한다. 윤석열 정권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전면 정권 퇴진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노조는 2일 저녁 6시30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숨진 양 지대장을 추모하는 촛불문화제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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