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 ‘등판’에 또 위기 넘긴 미국 은행권…두가지 변수 남았다
“은행권 위기 일단락” VS “아직 안심할 수 없어”
제이피모건이 1일(현지시각)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인수하면서 미국 은행권 위기가 또 한 번 고비를 넘기게 됐다. 앞으로 중요한 변수는 두 가지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서 시작된 미국 중소은행 불안이 여기서 일단락될지, 아니면 또 다른 곳으로 번져나갈지는 상황을 더 지켜봐야한다. 여기에 이번 일을 계기로 규제가 강화되고 은행들도 보수적인 경영에 돌입하면서 대출 축소 등으로 경기가 둔화될 가능성도 주요 변수로 부상 중이다.
제이피모건은 이날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106억달러(약 14조원)를 주고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제이피모건은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보유한 920억달러가량의 예금과 1730억달러어치의 대출 채권을 포함한 대부분의 자산과 함께 연방주택대출은행(FHLB)에서 빌린 280억달러 등 일부 채무도 끌어안으면서 ‘구원투수’가 됐다. 이에 금융당국도 미국 내 예금의 10% 이상을 보유한 은행(또는 인수 결과 10% 이상)이 다른 은행을 인수하지 못하도록 한 규제에 예외를 둬 제이피모건의 인수를 뒷받침했다. 또한 연방예금보험공사는 제이피모건에 5년간 500억달러를 고정금리로 지원해주고,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보유했던 가계 주택담보대출과 일부 기업 대출에 대해 최대 5∼7년간 80%까지 손실도 보전해주기로 했다.
이로써 미국은 실리콘밸리은행,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으로 옮겨붙던 은행발 위기의 급한 불을 가까스로 끄게 됐다. 향후 관건은 위기 확산이 멈출지다. 전문가들은 미국 중소은행 불안이 진정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혹시 있을 또 다른 위기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국제금융센터는 1일 보고서에서 “현 미국 중소은행발 위기가 퍼스트리퍼블릭의 폐쇄 및 피인수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으나 앞으로도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제 불안 심리는 조금씩 진정되는 분위기다. 중소은행에서 예금자보호 한도 이상의 자금을 빼 대형 은행에 예치하는 움직임이 점차 줄고 있는 것이다. 미국 상위 25개 은행을 제외한 중소형 은행에서는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직후 수일 간 1080억달러의 예금이 인출된 반면, 상위 25개 은행 예금은 1200억달러가 늘었고, 머니마켓펀드에도 2200억달러가 흘러들어갔다. 하지만 <시엔비시(CNBC)>는 지난 3월27일(현지시각) “이 같은 흐름이 3월 말 완화됐다”고 보도했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독특한 수익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도 불안 심리를 누그러뜨리고 있다. 다른 은행의 위기 가능성은 낮은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고소득 자산가를 중심으로 미국 예금자보호 한도인 25만달러를 넘기는 대규모 예금을 대거 유치해, 이를 바탕으로 저금리 시기 고소득 고객에 낮은 이자로 주택담보대출을 내어주며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급격한 정책금리 인상으로 수지 타산이 맞지 않게 됐고, 이 같은 불안정한 수익 구조는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을 계기로 예금 인출 사태를 불렀다.
반면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 등 은행권 위기를 언제든 다시 촉발할 위험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부실 대출을 가득히 안고 있다. 은행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은행권 불안이 경기에 미칠 영향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금융당국은 그간 대형은행에 대해서 적용하던 자본이나 유동성 관련 규제를 자산 규모 1천억∼7천억 달러 규모의 중소형 은행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은행들이 대출 축소 등에 나설 수 있으며, 이는 경기 둔화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예금자보호를 강화하려는 논의가 불안 심리 완화에 도움이 될지도 주목된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는 1일(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에서 법인 계좌의 예금보험 한도를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현재 미국의 예금보험 한도는 25만달러인데, 법인 결제계좌에 한해 이를 250만달러로 올리는 방안 등을 예시로 들었다.
이는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때 기업들의 예금 인출로 위기가 촉발된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통상 기업들은 결제 규모가 커서 예금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을 예금으로 넣어둔다. 예금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위기 때 돈을 빨리 뺄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불안심리 악화와 다른 예금주들의 추가 인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기업들의 예금만 더 두텁게 보호해주면 관련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이 리스크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예금보험공사는 봤다.
다만 구체적인 개선안을 놓고서는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실리콘밸리은행에서 예금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계좌의 평균 잔액은 지난해 말 400만달러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금보험 한도를 기존의 10배인 250만달러로 올려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예금보험공사는 “더 많이 보호받는 계좌의 범위를 정하는 문제, 예금주와 은행이 한도 차이를 우회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문제 등도 있다”고 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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