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펀드 땐 원금만 날렸지만…CFD 투자자는 빚까지 떠안아
'닮은 듯 다른' CFD-라임 사태
라임땐 금융사도 손실 분담…CFD는 책임 물을 곳 없어
라임, 한계기업 CB 입질…이번 조작은 우량주 투자
이번엔 모두 "나도 피해자"…각종 음모론도 꼬리 물어
▶마켓인사이트 5월 2일 오후 5시 31분
지난주 순식간에 시가총액 7조8500억원을 증발시킨 ‘다단계 주가조작 사건’은 2019년 터진 라임펀드 사기 사건을 상당 부분 벤치마크한 흔적이 엿보인다. 레버리지를 활용하고 다단계 방식으로 감쪽같이 세를 키웠다. 라임펀드 사기와 본질은 같지만 피해 강도가 다르다. 사기단에 돈을 맡긴 자산가들의 손실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는 투자원금(증거금)을 이미 다 날리고, 원금만큼 마이너스 손실이 추가로 발생했다. 그런데도 피해 보상을 요구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 비제도권에서 벌어진 탓에 폰지 사기의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조차 모호하다. CFD 다단계 주가조작 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해 라임펀드 사태와 닮은 듯 다른 점을 비교 분석했다.
(1) 같은 장외파생, 다른 손실률
두 폰지 사기극의 공통점은 장외파생계약으로 ‘빚투’(빚 내서 투자)를 했다는 점이다. 라임자산운용은 증권사 총수익스와프(TRS)로 대출받아 펀드 규모를 키운 뒤 코스닥시장 한계기업 전환사채(CB)와 해외 무역금융 펀드, 부동산 등에 편법 투자했다. 이번 주가조작단은 라임처럼 펀드나 일임을 받지 않고 개인 휴대폰을 직접 관리하며 CFD로 레버리지를 키웠다. TRS와 CFD는 증권사가 자기 돈으로 대신 투자하고 차후 손익을 정산하는 계약이다. CFD는 TRS의 개인(전문투자자) 버전이다. 선물·옵션과 마찬가지로 원금 이상의 손실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약 주체다. 펀드는 원금 이상 손실이 났어도 투자자는 원금 이상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라임 무역금융펀드에서 투자금을 전액 날렸지만 거기까지였다. CFD 다단계 주가조작단 사례는 다르다. 4억원을 증거금으로 맡기면 증권사는 6억원을 더해 10억원을 대신 투자한다. 이번 무더기 연속 하한가로 주가가 80% 급락한 사례를 적용하면 8억원 손실이 발생했다. 원금 4억원을 다 날리고, 추가로 4억원을 더 물어줘야 하는 셈이다. 개인이 CFD 계약을 맺은 만큼 개인이 투자원금 이상의 손실을 물어줘야 할 판이다.
(2) 피해 하소연할 곳도 없어
CFD 폰지 주가조작단에 돈을 맡겼다가 날린 자금은 8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전체 CFD 시장 3조5000억원에서 선광 대성홀딩스 등 8개 종목의 비중을 35% 수준(1조2200억원)으로 가정하고, CFD 반대매매로 주가가 평균 66% 급락했다는 점을 감안한 결과다. 주가조작단이 굴린 개인 투자자금(증거금 40%)은 4880억원이다. 8000억원 가운데 3000억원가량을 추가로 물어줘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CFD 전체 피해자는 15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전체 피해자는 라임펀드 사태가 더 많았다. 2019년 말 1조6000억원대 환매 중단이 발생해 개인투자자 4035명과 법인 581곳이 물렸다. 하지만 개인 피해 규모는 이번 폰지 사기극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라임펀드 피해액은 대부분 은행과 증권사가 보상해줬다. 라임펀드를 위험성 낮은 우량 펀드로 둔갑시켜 공모펀드처럼 판 대가였다. 라임펀드를 팔지 않은 은행과 증권사를 찾기 어려웠다. 이번 CFD 피해자는 살인적인 손실에 노출됐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다. 제도권에서 이뤄진 폰지 사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3) 수익률 앞세워 자산가 유인
폰지를 활용한 사기는 같지만 증시에서 투자한 대상은 완전 다르다. 라임펀드는 레버리지를 일으켜 코스닥 한계기업 CB에 집중 투자했다. 검찰의 ‘블랙리스트’로 통하는 코스닥 회장들과 한통속으로 지내면서 라임펀드 자금을 대주고 대가를 챙겼다.
이번엔 삼천리 서울가스 세방 등과 같은 자산주만 집중 매입했다. CFD로는 코스닥 한계기업을 살 수 없기 때문에 대주주 지분이 높고 거래가 적은 소외주를 타깃으로 했다. 2020년 선광을 시작으로 포트폴리오를 늘렸다. 이들 종목의 특징은 한 번도 출렁이지 않고 우상향했다는 점이다. 일반 주가조작 세력처럼 바이오, 리튬 등 특정 테마를 노려 보도자료를 낼 필요도 없었다. 이들은 CFD로 수익률을 극대화하면서 알음알음 회원을 늘려나갔고, 수익의 50%를 골프장, 갤러리 등을 통해 받아 챙겼다.
(4) 가해자가 음모론 설파
사기 수법이 만천하에 드러난 뒤 라임펀드 주범들은 잠적했다. 반면 이번 사건은 모두가 ‘피해자’라고 외치고 있다. 가수 임창정 씨 부부뿐만 아니라 가수 박혜경 씨, 이중명 전 아난티그룹 회장 등도 투자 피해를 알렸다. 사기극의 주범으로 지목된 투자컨설팅업체 호안의 라덕연 대표도 방송에 나와 자신을 ‘피해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익을 본 사람이 ‘가해자’라는 논리를 펴면서 상장사 대주주와 공매도 세력을 주범으로 지목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주식시장에선 각종 음모론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비제도권에서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발생한 유례 없는 주가조작 사기극”이라며 “라임펀드 사태와 달리 피해자들도 수익금의 50%를 가해자에게 지급하면서 불법을 인지했을 소지가 있는 만큼 가해자와 피해자를 일일이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는 라임 사태 보도로 2020년 2월 제51회 한국기자상 경제보도부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증권부 차장 겸 마켓인사이트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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