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자료 제출 거부한 한국노총에 정부 26억 국고보조금 끊었다
'회계 장부를 제대로 보관하고 있는지 확인할 서류를 내라'는 요구에 불응한 한국노총에 대해 정부가 국고보조금 지원을 끊었다. 한국노총이 신청한 보조금 규모는 26억 원 정도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이 노동자 법률 상담에 사용되고 있어 노동자에게까지 피해가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자료를 제출하면 다시 심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한국노총은 자료 제출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노총, 26억 지원금 끊겼다... 정부 "회계 투명성 확인 안 돼"
2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한국노총은 2023년 노동단체 지원사업 심사 결과 보조금 지원 대상에 선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매년 노동자 권익보호, 고용안정 등을 위해 노동단체와 비영리단체가 수행하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한국노총도 매년 지원을 받는 노동단체 중 하나였다.
한국노총이 지원금 대상에서 배제된 것은 회계 투명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말부터 노조에 "회계 투명성, 조합원 알권리 보장을 위해 '회계 관련 서류의 비치·보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를 내라"고 요구해 온 정부는 지난 2월 노동단체 지원사업을 개편하면서 해당 자료 제출을 선정 조건으로 내걸었다.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노조가 투명한 회계 관리, 조합원의 알권리 보장 등의 법적 의무를 지키고 있는지 확인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자율권 침해'를 이유로 끝내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 정부는 국고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보조금 중단 결정에 따라 올해 한국노총 사업에도 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한국노총은 올해 26억 원 규모의 지원금을 △지역 노동교육 상담소 운영(14억7,700만 원·56.8%) △노조 간부 교육 사업(5억1,300만 원·19.7%) △정책 연구 사업(4억7,700만 원·18.3%) △국제 회의 및 교류·홍보(1억2,000만 원·4.6%) 등에 쓸 예정이었다.
특히 보조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 노동교육 상담소 운영 사업은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지역 노동교육 상담소는 1989년 정부 건의를 통해 시작된 사업으로, 지난해 기준 전국 19개 상담소에서 2만5,000여 건의 무료 법률·구조 상담이 이뤄졌다. 상담자 중 비조합원이 1만5,743명, 조합원은 1,843명 정도인데, 사업이 중단되면 일반 노동자에게까지 영향이 미칠 수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지원금이 끊겨도 당분간 운영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상 전국민 대상 사업을 자체 예산만으로 계속 운영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미 진행 중인 국고보조사업도 삐걱대는 상황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산업안전, 중대재해 예방 캠페인을 매년 시행해왔는데, 올 초 계약서를 썼는데도 4억1,000만 원의 예산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캠페인은 이미 시작된 상황"이라고 했다. 반면 정부 위탁사업(21억6,000만 원)인 직장 내 괴롭힘 상담센터는 예산 집행이 이뤄져 운영 중이다.
정부 "자료 내면 결과 바뀔 수도" vs 한국노총 "끝까지 거부"
정부는 한국노총이 이달 중순쯤 진행될 2차 심사 때 회계자료를 제출하면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1차 심사에서 한국노총을 탈락시키면서 총 44억 원의 예산 중 8억 원가량만 집행됐기 때문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양대노총 산하 노조 중에서도 회계자료를 제출한 노조들은 심사를 통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면서 "2차 공모 때 (제출 문제가) 해소된다면 심사가 다시 이뤄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을 '노조 길들이기'로 규정한 한국노총은 끝까지 자료 제출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통해 "투명한 회계 관리와 조합원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이미 외부회계감사, 대의원대회 심의·의결 절차를 거치고 있고 예결산서는 10년 치를 비치·보관하고 있다"며 "조합원이면 일정 절차를 통해 이를 열람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노조에 관련 자료를 요청할 법적 근거가 없고, 최근 자료 미제출로 부과된 과태료에 대한 법률 대응도 준비 중"이라며 "(법적)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관련 기준으로 지원사업을 중단하는 것은 탄압이며 노조를 돈으로 길들이려는 치졸한 수작"이라고 비판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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