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과도한 보조금에 청년 구직 포기"…기본소득 깎고 계약직 늘려

김리안/박신영 2023. 5. 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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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패키지' 의결
멜로니 "일할 수 있는 사람 일하게"
伊 만성 재정적자 시달리는데
기본소득에 막대한 돈 퍼부어
그냥노는 '니트족' EU 1위 불명예
기업들 단기 계약직 고용 쉽게
근로자 "생계 위기" 전국서 시위

“멜로니 총리의 생각은 기업이 국가의 부를 창출한다는 것입니다.”

노사 관계를 연구하는 어댑트재단의 프란체스코 세게치 대표는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노동개혁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기업들이 나서야 하는데, 현재 이탈리아 기업들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부족하고 노동자가 충분치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멜로니 총리와 여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은 가장 큰 원인으로 과도한 정부 보조금을 꼽았다. 대규모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이탈리아가 근로 의욕을 꺾는 불필요한 지출을 이어오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주요 노조와 야당은 정부가 노동자들을 생계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시민소득 수령기간 제한

이탈리아는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이 집권하던 2019년에 시민소득 제도를 도입했다. 연간 가구 소득이 9360유로(약 1380만원) 이하이면서 저축액이 6000유로(약 885만원) 미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가구당 받는 월평균 시민소득은 약 550유로(약 81만원)다. 하지만 이 제도는 시행된 이후 줄곧 비판을 받아왔다.

노동경제학자인 피에트로 라이클린은 “시민소득 제도는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으려는 의욕을 크게 꺾을 수 있다”며 “특히 이탈리아에서 임금이 높지 않은 남부 지역에서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하다”고 말했다. 실제 2021년 기준 이탈리아의 15~29세 젊은이 가운데 구직을 단념한 이른바 ‘니트족’ 비율은 23.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럽연합(EU) 평균인 13.1%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로, EU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FT는 “이탈리아의 고용주들도 실직한 모든 국민에게 월급을 지급하는 시민소득 제도로 인해 노동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불만을 오랫동안 제기해왔다”고 전했다.

멜로니 총리와 여당은 이 같은 여론을 감안해 18~59세 빈곤층에 대한 시민소득을 내년 1월부터는 월 350유로(약 51만원)로 삭감키로 했다. 시민소득 수령 기간은 최대 12개월로 제한되고, 이 기간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미성년자, 60세 이상 노인 또는 장애인이 있는 가구는 최대 30개월 동안 월 500유로(약 73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게 한다.

 단기 계약직 고용은 더 수월하게

패키지 법안에는 기업이 12개월에서 24개월 사이의 단기 계약직 고용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는 계약직 인원이 전체 정규직의 20%를 넘지 못하게 법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연간 소득이 3만5000유로(약 5160만원) 이하인 근로자의 소득세를 감면하기 위해 약 30억유로(약 4조4236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잔카를로 조르제티 경제재정부 장관은 “생활비 위기에 맞선 구체적인 조치”라며 “월평균 100유로(약 14만원)의 감세 혜택이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녀를 둔 근로자는 연간 최대 3000유로의 세금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다만 시민소득을 수령하는 동안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부족하고, 누가 취업 가능한지 평가하는 문제는 남아 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정책 의지를 꺾을 순 없다는 평가다. 세게치는 “이 정부의 생각은 일자리가 없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며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스스로 일자리를 찾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정책 취지”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최대 노조인 노동총연맹(CGIL)의 마우리치오 란디니 대표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은 것은 높은 세금과 고용 불안정 때문”이라며 “이번 패키지 법안이 고용 불안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에 반발해 로마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수천 명의 노동자가 시위를 벌였다.

김리안/박신영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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