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친일 굴욕외교 참사" 교수 등 85인 시국선언…한국외대 측 "공식입장 아냐"

한기호 2023. 5. 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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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일본학 단과대 보유 한국외대서 "2023 시일야방성대곡" 시국선언문
교수·연구자 85인 연명, 이란학과 교수가 주도…전체 교수진은 300명 이상
尹 '날리면' '이란=UAE의 적' 징용 배상 대위변제' '100년 무릎' 발언 등 규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방문을 앞둔 지난 4월2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한국외국어대(HUFS) 교수 일부와 연구자들이 2일 윤석열 정부의 대일(對日)외교 노선과 대통령의 언행을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냈다. 이른바 '2023년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다. 국내 유일의 일본학 단과대를 보유한 대학의 교수·연구진으로부터 한일관계를 "굴욕외교" "외교참사"로 규정, 기존 정치권의 반일(反日) 논리와 유사한 메시지가 나온 셈이다. 한국외대 측은 대학의 공식입장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외대 교수·연구자 총 85명은 이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외교참사가 거듭되더니 급기야 굴욕적인 외교 행보를 보이기에 이르렀다. 한국외대 교수들은 윤석열 정부의 거듭되는 외교참사와 굴욕적인 외교행보에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다"는 시국선언문을 냈다. 한국외대는 교수진만 3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여 교수 등은 실명을 적시한 시국선언문 대자보를 교내에 부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동 전문가' 유달승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가 시국선언을 주도했다. 그는 지난 1월 윤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파병 아크부대 방문 당시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우리 장병들에게 말한 것과 관련, 언론과 민주당 주최 토론회 등을 통해 "외교적 결례"라고 지적한 바있다. 이번엔 정부가 일제 징용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금을 제3자 대위변제 방식으로 지급하기로 한 것과,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발언을 겨눴다.

교수·연구자 85인은 "지난 4월24일 윤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100년 전 일을 가지고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언한 내용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충격과 분노 그 자체"라며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78년이 지난 오늘에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규탄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되풀이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겠나"라고 비판했다.

또 "지난 3월 6일, 윤석열 정부는 '일본 전범 기업이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2018년 10월30일)을 무시한 채, 한국 기업의 기부금을 받아 배상하겠다는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했다"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나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참여는 배제된 상태였다. 이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원천무효화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가 그토록 내세웠던 공정과 법치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라며 "윤석열 정부는 아무런 국민적 동의도 거치지 않고 제3자에 의한 변제 방식을 피해자들과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3월 16일 기시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는 '우리 정부가 자체적으로 배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자청함으로써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굴욕적인 외교 행보를 보였다"고 규정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친일적 외교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우리가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며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라고 발언했다"며 "국권 상실의 원인이 우리한테 있다는 논리로 일제의 식민사관이나 친일파의 주장"이라고 빗댔다.

나아가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과거사 왜곡이나 독도 영유권 주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며, 마치 일제의 과거 만행을 부정하는 듯한 어처구니없는 모습"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날리면' 발언을 비롯해 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에 대한 옹호성 발언,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한 공개 발언 등 수많은 외교 참사를 일으켜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리고, 국익을 저해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 85명은 "이에 한국외대 교수들은 윤석열 정부와 대통령에게 다음 사항을 이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라며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방식 즉각 철회 △굴욕적인 친일 외교 행보 중단과 국격·국익에 부합하는 한일관계의 수립 방안 즉각 마련 △'공정과 실리의 추구' 외교원칙 준수 및 중장기 외교정책 마련 △윤 대통령이 독립운동 선열에 눈물로 참회하고 역사와 국민 앞에 사죄할 것 등을 요구했다.

한편 한국외대 측은 이날 시국선언문 보도에 관해 "학교의 공식입장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참여 교수진의 구체적 명단과 소속은 제공받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한 인터넷매체는 시국선언문과 참여자 실명 명단 전체를 이날 온라인으로 보도했다. 명단으로 미루어 일본학대학 교수진은 1명을 제외하고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 홈페이지엔 지난 2021년 3월말 교수협의회를 중심으로 교수진의 절반을 넘는 188명이 '미얀마 군사쿠데타 규탄, 민주화 투쟁 지지' 성명서를 30개 언어로 발표한 사례가 소개돼 있다. 지난해 3월말 서울캠퍼스-글로벌캠퍼스 총학생회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계기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한 적도 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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