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비 안 오른 게 없네” 바들바들… 밥 사먹기 겁난다

이희경 2023. 5. 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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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물가 고공행진
물가상승률 3%대 둔화 불구
먹거리 중심 가격 상승 여전
내주 전기 요금 인상 가능성
‘고물가 그늘’ 서민 부담 가중
삼겹살·냉면 등 8개 대표 품목
1년 전보다 가격 최대 16.3% ↑
치킨·빵·우유 등 간식값도 뛰어
401개 품목 근원물가 요지부동
오펙 감산에 유가 불확실성 커
원화 약세까지 물가 안정 위협
# 김포에 살고 있는 A(42)씨는 최근 아내 없이 친구와 공동육아도 할 겸 만나 저녁을 먹다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고깃집에 갔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너무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삼겹살 1인분에 1만4000원 정도로 생각했지만 1만7000원으로 오른 데다 1인분 정량도 200g에서 150g으로 줄어 평소보다 더 많이 돈을 내야 했다. 박씨는 “두 가족이 삼겹살 5인분 정도 시키고 소주, 아이들 먹을 공깃밥 등을 평소처럼 주문했는데 13만원 넘게 나왔다”며 “원래 내가 사기로 했지만 가격이 너무 부담돼 결국 절반씩 나눠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B(32)씨는 모처럼 마트에 들러 장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상보다 2배가량 가격이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우유, 라면, 계란, 즉석밥 등 기본적인 식품 몇 가지만 담았는데도 금방 10만원을 훌쩍 넘겼다. 요리는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B씨는 “외식물가가 너무 올라 직접 해먹자 싶어 장을 봤는데 사 먹는 거랑 별반 차이가 없을뿐더러 노동력까지 더하면 오히려 더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주변에서 식비 때문에 끼니를 줄이겠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이 14개월 만에 3%대로 둔화했지만 먹거리를 중심으로 가격 상승세가 여전해 서민들의 지갑을 얇게 하고 있다. 그간 누적됐던 원가 부담이 서서히 외식 등 개인서비스에 전가되면서 좀처럼 물가 둔화세가 체감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역시 전체 물가와 달리 잘 떨어지지 않고 있어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내주 전기요금 인상이 예정돼 있는 데다 산유국 모임인 오펙플러스(OPEC+)의 감산 결정 등 대외 불안 요인도 적지 않아 지난해부터 지속됐던 ‘고물가’의 그늘이 쉽게 걷히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4월 물가 3%대 둔화했지만… 먹거리 부담 여전

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80(2020년=100)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3.7% 올랐다. 이는 3월 상승률(4.2%) 대비 0.5%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물가 상승률이 3%대로 둔화한 것은 지난해 2월(3.7%) 이후 처음이다.

물가 둔화세를 견인한 건 석유류 가격이었다. 석유류는 1년 전보다 16.4% 내렸다. 이는 2020년 5월(-18.7%) 이후 3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휘발유(-17.0%), 경유(-19.2%), 자동차용LPG(-15.2%) 등이 하락했다. 아울러 농축수산물도 1.0% 올라 전월(3.0%)보다 상승폭이 둔화됐고, 가공식품도 7.9% 올라 전월(9.1%) 대비 상승폭이 낮아졌다. 전기·가스·수도도 23.7% 올라 전월(28.4%)보다 상승폭이 약화됐다.

당초 지난달 예정됐던 전기요금 인상 등이 미뤄지고 지난해 4월 인상에 따른 결과가 반영되면서다.

반면 먹거리 품목을 중심으로 물가는 여전히 높았다. 개인서비스가 6.1% 올라 전월(5.8%)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다. 외식이 7.6% 올라 전월(7.4%)보다 상승폭이 커졌고, 외식 외 개인서비스가 5.0% 올라 2003년 11월(5.0%) 이후 19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그간 누적된 원가 부담 및 여행 수요 회복 등으로 외식 및 외식 제외 서비스가 모두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소비자원의 가격 정보 종합 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지역 삼겹살, 삼계탕, 냉면 등 대표 외식 품목 8개의 평균 가격은 1년 전보다 최대 16.3%까지 올랐다. 최근 프랜차이즈 업계도 잇달아 가격을 올리고 있다. 교촌치킨을 운영하는 교촌에프앤비는 지난달 3일부터 소비자 권장 가격을 최대 3000원 인상했고, 버거킹은 지난달 10일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평균 2% 올렸다.
둔화하고 있다지만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중에서 가격이 뛴 품목도 적지 않았다. 농산물 중에서는 양파(51.7%), 파(16.0%), 풋고추(14.4%) 등의 상승폭이 여전히 높았고, 가공식품 중에서는 빵(11.3%), 스낵과자(11.1%), 우유(8.9%), 기능성 화장품(13.0%), 유아동복(9.6%) 등이 고공행진을 했다.

◆잘 떨어지지 않는 근원물가… 전기요금 인상도 부담 키워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도 ‘끈적’한 상황이다. 근원물가는 물가변동의 장기적인 추세를 파악하기 위해 일시적 요인을 제외하고 작성하는 지수를 말하는데 통화 당국이 기준금리 수준을 결정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 지난달의 경우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401개 품목으로 구성된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6% 올라 3월(4.8%)보다 0.2%포인트 감소하는 데 그쳤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 역시 4.0% 올라 3월과 상승폭이 같았다. 이 지수가 전체 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것은 2020년 6월 이후 34개월 만에 처음이다.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모습. 뉴스1
문제는 대내외에 걸쳐 앞으로 물가 불안을 자극할 만한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는 점이다. 우선 올해 2분기(4~6월) 전기요금 인상이 다음 주에 결정된다. 정부 안팎에서는 ㎾h당 10원 안팎 정도 전기요금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0원가량의 인상을 가정하면, 평균적인 4인 가족(월사용량 307㎾h)의 월 전기요금 부담액은 부가세와 전력기반기금까지 포함할 경우 기존 5만7300원에서 6만780원으로 3000원가량 올라 6만원 대로 올라서게 된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전력 사용이 급증하는 여름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인상 폭 수준이 한 자릿수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함께 나온다.

아울러 오펙플러스가 이달부터 하루 116만배럴 감산에 나서고, 러시아산 원유 공급도 감소할 가능성이 있어 국제유가 안정세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1340원을 넘어 연일 고점을 찍을 정도로 원화 가치가 다른 통화 대비 약세를 보여 수입물가가 높아지고 있는 점도 물가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국제에너지 가격 급등 등에 따른 세계적 고물가 속에서 (한국은) 낮은 물가 정점을 기록했으며 상대적으로 물가 둔화 흐름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면서도 “국제에너지 가격 불확실성 등 향후 물가 불안요인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도 이날 주재한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중반까지 뚜렷한 둔화 흐름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근원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소비자물가에 비해 더딘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향후 물가 경로 상에는 국제유가 추이, 국내외 경기 흐름, 공공요금 인상 폭 및 시기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이희경 기자, 박미영·이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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