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행정심판과 법무부의 비공개 ‘억지 주장’

박상희 2023. 5. 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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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전체가 쓴 업무추진비 카드 사용내역의 비공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이 제기된 가운데, 법정 처리 기한을 2배 이상 넘기고도 행정심판 심리기일이 잡히지 않고 있다. 행정심판을 제기한 지 오늘(5월 2일)로 149일째다. 

본래 행정심판을 처리해야 하는 법정 기한은 60일이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30일을 연장해 최대 90일까지 처리해야 한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처리 기한을 현재까지 거의 한 달 간격으로 3번 연장했다. 

공공기관의 비공개 결정에 맞서, 행정소송을 가지 않고도 “신속하고 간편한” 구제를 받을 수 있게 한 행정심판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제의 행정심판은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 하승수 변호사가 지난해 12월 5일 제기했다. 법무부 전 부서가 쓴 업무추진비 카드 사용내역에 대한 비공개 처분이 부당하고 위법하다며,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청구 건이다. 

“업무추진비 적게 쓴다”는 한동훈 장관, 법무부 전체 업추비 카드 사용내역은 비공개

올해 3월 26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쓴 업무추진비와 관련한 기사가 쏟아졌다. 지난해 4분기 한동훈 장관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보니, 전임 박범계 전 장관이 쓴 액수의 6분의 1 수준이었다는 내용이다. 추미애 전 장관 때보다 절반으로 줄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 구글에 ‘한동훈 업무추진비’라고 검색한 결과.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평소 도시락을 먹으며 검소하게 업무 수행을 해온 한 장관의 업무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처럼 장관이 업무추진비를 알뜰하게 썼다고 홍보하는 보도는 많았지만, 정작 법무부는 각 부서마다 사용한 업무추진비 카드 사용내역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해 법무부가 쓰는 업무추진비는, 검찰에 배정된 예산을 포함해 2023년 올해 기준으로 약 72억 3천만 원이다. 

2022년 8월 1차 정보공개 청구…법무부, 신용카드 매출전표 비공개 

지난해 8월 23일,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뉴스타파 전문위원)는 2022년 1월 이후 법무부 장·차관의 업무추진비 세부 집행내역과 지출 증빙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했다. 9월 21일, 법무부는 홈페이지에 있는 한 장관의 업무추진비 집행내역 파일을 첨부해 공개 통지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신용카드 매출전표 같은 세부 지출 증빙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카드사로부터 카드 사용내역 등을 정보처리시스템으로 전송받아 전자적으로 보관한다”면서 “신용카드 매출전표, 영수증 등 지출 증빙서류는 별도로 보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 2022년 9월 21일, 법무부가 하승수 변호사에게 보낸 정보공개 결정 통지서 중 일부.

전자상으로 ‘카드 사용내역’을 보관할 뿐, 하 변호사가 청구한 ‘신용카드 매출전표’는 따로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당초 하 변호사의 청구 취지는 정보공개 청구서에 적혀있는 대로, “(업무추진비) 지출을 증빙하는 자료 일체”를 공개하라는 것이었기에 법무부의 이런 답변은 궤변에 가까웠다. 

2022년 9월 2차 청구…‘카드 사용대장’과 ‘지급결의서’만 공개 

하 변호사는 곧바로 법무부에 두 번째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번엔 장·차관의 업무추진비 지출과 관련한 ‘카드 사용내역’을 달라고 했다. 또 내부 결재서류, 간담회 계획서 등 ‘법무부가 보유한’ 모든 지출 증빙자료를 공개하라고 요청했다. 

두 번째 정보공개 청구를 받은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25일, 법정 통지 기한을 5일 넘긴 뒤에야 장·차관실의 ‘정부구매 카드 사용대장’과 ‘지급결의서’를 공개했다.  

▲ 2022년 10월 25일, 법무부가 하승수 변호사에게 공개한 장관실 업무추진비 관련 정부구매카드 사용대장 중 일부.

2022년 10월 3차 청구…“카드사로부터 통보받은 법무부 전체 카드 사용내역” 비공개  

이틀 뒤, 하 변호사는 법무부 답변을 참고해 세 번째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공개를 요구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법무부 전 부서가 2022년 1월부터 9월까지 정부구매 카드로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것과 관련해, 카드사로부터 통보받은 카드 사용내역 또는 청구서.”  

하 변호사가 이렇게 청구한 데는 우선, 법무부의 업무추진비 사용 실태 전반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답을 미루는 법무부의 행태, 그동안 법무부가 공개한 자료를 볼 때, ‘원본 자료’ 즉,  카드사로부터 통보받은 법무부 전체의 업무추진비 카드 사용내역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약 한 달 뒤 법무부는 이번에는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하 변호사는 2022년 12월 5일, 법무부의 정보공개 거부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을 냈다.

“업무추진비 공개는 법원 판례 입장…법무부도 예외 안 돼”

가장 최근인 올해 4월 13일, 대법원은 “검찰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등 예산의 세부 정보를 공개하라”고 확정 판결했다. (관련 기사 : [주간 뉴스타파] 1,243일만의 승소... '검사' 윤석열, 검증의 시간

▲ 2023년 4월 13일 보도된 뉴스타파 기사.

이에 따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은 업무추진비와 관련해 “간담회 등 행사 참석자의 소속과 명단, 카드번호, 승인번호, 계좌번호 등 개인식별정보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지출 증빙서류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공개 자료는 지출결의서, 내부 결재서류, 신용카드 영수증, 세금계산서 등이다. 

법무부 궤변 ① ‘특수활동비’ 판시 문구 근거로 ‘업무추진비’ 비공개 주장

그런데 법무부는 엉뚱하게도 검찰 예산의 공개를 판시한 판결문 중 특수활동비에 관한 문구를 근거로 업무추진비의 비공개를 주장했다. 

법무부는 올해 1월 13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낸 답변서에서, “법무부 각 실·국의 업무추진비 카드 사용내역을 공개하면 수사, 형 집행 정보 등이 드러나 직무 수행에 차질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비공개의 근거로는 서울고등법원의 검찰 예산 공개 판결문에 있는 이 문장, “검찰의 특수활동비 집행내용 등을 공개할 경우, 수사 등 직무 수행에 큰 지장을 줄 개연성이 높다”는 내용을 인용했다. 

▲ 2023년 1월 13일, 법무부가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서 중 일부. 

하지만 위의 법무부가 언급한 판결문의 문장은 업무추진비가 아닌 특수활동비에 관한 것이다. 

재판부는 같은 판결문에서 업무추진비의 공개와 그 사유를 명시했다. “업무추진비는 수사 업무가 아닌 간담회 등 검찰청 공식 행사를 위해 지출됐기 때문에 업무추진비 정보가 공개되더라도 수사 업무에 장애를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른 정부 부처도 아닌 법무부가 법원 판결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법무부 궤변 ② “식당 이름 공개되면 영업 피해를 볼 것” 

법무부는 청사가 있는 경기 과천시가 ‘소도시’라고 말하며 “업무추진비를 쓸 만한 음식점이 몇 안 되고, 각 상호명이 공개되면 이용 빈도가 줄어 영업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무추진비와 관련해 과거 검찰도 비슷한 변론을 펼쳤는데,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음식점의 이름 등 장소명을 공개하면 음식점의 경영‧영업상 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또 “정보가 공개될 경우 해당 음식점에 언론의 시선이 집중되고 일반인들이 그 음식점 이용을 꺼려함으로써 해당 음식점의 영업이익이 침해될 우려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검찰의 주장은 1·2심 재판 과정에서 모두 폐기되고 기각됐다.

2022년 1월, 1심 재판부는 “해당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는 사실이 공개된다고 해서, 해당 음식점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한다거나 경영‧영업상 비밀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고”고 했으며, 그해 12월, 2심 재판부도 “해당 음식점을 이용한 사실이 공개된다고 해서 해당 음식점의 경영·영업상 비밀을 침해한다거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발생한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사법부의 일관된 업무추진비 공개 판결은, 검찰뿐 아니라 법무부 등 모든 정부 기관의 업무추진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법무부, 비공개 결정한 행정심판 사례 언급…법원 판례는 무시

지난해 6월 24일, 모 공사의 대표와 임원의 업무추진비 지출 증빙자료 등을 공개해달라는 정보공개의 거부처분에 대한 행정심판(국민권익위원회, 사건 2021-11525)이 열렸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비공개가 맞는다고 판단했다. 중앙행정심판위는 영수증 사본과 같은 지출 증빙자료에 영업 비밀이 포함돼 해당 법인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봤다. 

법인카드 식별번호, 카드번호, 세무정보(법인 계좌번호) 등과 같이 법인 등의 경영ㆍ영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정보가 혼합되어 있어 이것이 공개되면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이고, 이를 일일이 비공개 및 공개 대상으로 분리하는 경우 정보로서의 가치를 갖는다고 볼 수 없는 점… 
-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사건 2021-11525 행정심판 재결례 중

법무부는 업무추진비 카드 사용내역의 비공개 근거로 이 행정심판 사례를 들었다. 하지만 지난 수년 동안 법원은 정부 부처 등 공공기관의 업무추진비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판례를 확고히 세우고 있다. 최근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승소해 업무추진비 등 검찰 예산 정보의 공개를 확정한 대법원 판결이 대표적이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수많은 법원 판례는 무시한 채, 행정심판위원회의 비공개 결정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행정심판례는 법원 판례 이상의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다. 쉽게 말해 행정심판례는 사실상 행정부 안에서의 ‘시정 절차’로 여겨질 뿐이다.  

국민권익위 “행정심판 2년 넘기기도”…하승수 “행정심판위 독립성이 문제”

지난해 12월에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5개월 동안,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청구자인 하승수 변호사에게 “자료 검토, 증거 조사 등으로 행정심판법 제45조 규정에 의해 재결 기간을 연장한다”고 세 번 통보했다. 이외의 연장 사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 하승수 변호사가 ‘온라인 행정심판’ 사이트에서 확인한 사건 기본 정보. 맨 하단에서 ‘지연 사유’를 확인할 수 있다.

행정심판법에 따라 행정심판 처리 기간은 최장 90일로 정해놨지만, 이를 어기더라도 처벌하거나 강제할 법 규정은 없다. 행정심판 처리 기한은 일종의 ‘훈시 규정’에 불과하다. 

제45조 (재결 기간) ① 재결은 제23조에 따라 피청구인 또는 위원회가 심판청구서를 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하여야 한다. 다만,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위원장이 직권으로 30일을 연장할 수 있다.
- 행정심판법 제45조 중

하승수 변호사는 “정권이나 행정 기관들은 정보공개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 정보공개에 관한 행정심판에서는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경우 국민권익위원회 산하에 있다. 또 중앙행정심판위원장은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맡는다. 정부의 정보를 공개할지 그 여부를 결정하는 중앙행정심판위가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성국 활동가는 “(과거 행정심판을 청구하면) 재결 기간 연장이 두 번까지는 됐었는데 세 번 연장된 적은 거의 없었다. 재결이 기피되는 현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당시 정세에서 민감한 사건의 경우 실제로 (행정심판) 재결 기간의 연장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중앙행정심판위원회를 운영하는 국민권익위원회는 “법정 처리 기한이 있는데, 그렇게 (기한을 지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국민권익위 홍보담당자는 “(재결 기간이) 130일이 넘어가는 상황이 많다. (정보공개 행정심판처럼) 다툼이 있으면 1~2년도 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또 이번처럼 준비서면이 여러 번 오갈 경우 처리 기한을 넘기기도 한다 “이 사건은 그래도 빨리 처리된 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행정심판이 시작되고 하승수 변호사와 법무부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여러 번 답변서를 제출했다. ① 지난해 12월 5일, 하 변호사가 행정심판을 청구한 이후 ② 올해 1월 13일, 법무부가 답변서를 냈고 ③ 1월 25일, 하 변호사가 보충 반박서면을, ④ 4월 12일에는 법무부가 재반박을 담은 보충 답변서를, ⑤ 마지막으로 4월 24일, 하 변호사가 다시 추가 보충 반박서면을 냈다. 

▲ 하승수 변호사가 ‘온라인 행정심판’ 사이트에서 확인한 ‘나의 사건 진행 현황’ 중 일부. 1번 답변서, 5번 제출자료(보충서면)가 법무부로부터 하 변호사가 받은 문서들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심리기일을 먼저 잡고 그날까지 (법무부가) 보충 답변서를 내게 하면 됐을 일”이라면서, 추가 답변을 받기까지 석 달 가량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중앙행정심판위, 청구 156일 만인 “5월 9일 심리” 통보했다가 또다시 연기 

이와 관련해 권익위 관계자는 뉴스타파에 보낸 답변서에서 “장기 미결 사건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답변서의 신속한 제출을 유도하는 등 업무 과정을 개선, 조사관 역량을 강화해 법정 재결 기간을 지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5월 9일에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뉴스타파의 취재가 시작된 뒤 지난 4월 28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하승수 변호사에게 오는 5월 9일에 “심리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행정심판을 청구한 지 156일 만에 결론이 날 것으로 보였지만, 중앙행정심판위는 통지했던 심리기일을 또다시 연기했다.

하승수 변호사는 5월 1일 중앙행정심판위로부터 “심리기일이 조정돼 향후 심리기일을 다시 통지할 예정”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행정심판이 기약 없이 또 한 번 연기된 것이다. 하 변호사는 이번 행정심판처럼 “재결이 지연되는 것은 결국, 심판기관의 독립성 문제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뉴스타파 박상희 sacha@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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