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함‘개’ 살자
내 반려견 수리는 유기동물보호센터 출신이다. 거리를 헤매기 전에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았을 것이고, 애초에는 한 어미 개의 새끼였을 테다. 유기견은 다만 어느 길에서 어미를 또는 어미 같은 보호자를 잃었을 뿐, 그들은 여전히 사람을 기다리고 그를 온 마음으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처음 수리를 입양하고 한동안 수리가 유기견이라는 사실을 말하기 꺼렸다. ‘유기견’이라는 단어에 곧장 상대방 눈빛에 안타까움이나 측은함이 서리는 게 싫어서였다. 6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다. 기회만 있으면 수리의 유기견 이력을 홍보(?)한다. 예쁘게 생겼다며 품종을 물어 오면 땡큐다. “유기견보호센터에서 데리고 와서 부모견을 몰라요. 품종은 미스터리지만 정말 예쁘죠?” 나이를 궁금해하는 이도 대환영이다. “유기견보호센터에서 입양해서 정확히는 모르는데 짐작하기로는 열두 살이에요.” 어려 보인다는 말까지 들으면 작전 대성공!
그 틈에 덧붙이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얘를 여섯 살에 입양했는데, 아유, 척 하면 척이라 ‘개알못’이던 저를 번듯한 반려인으로 만들어 놨다니까요.” 내향형 인간인 내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줄줄 읊는 이유는 하나다. 유기견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반려견 입양을 고려 중이라면 유기견도 선택지에 나란히 놓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렇기는 해도 혼자의 노력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점이 많아 늘 아쉽다.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면 유기동물 입양을 독려하는 캠페인이 제법 있다. 얼마 전에는 ‘와디즈’에서 진행한 펀딩이 성공해 큼직한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한 포토 스튜디오 ‘이층사진관’이 기획하고 제작한 책의 제목은 『함개살자_그림 같은 내 새끼』다. 책은 유기견에서 반려견이 된 개 116마리의 사연을 담았다. 사실 개의 사연은 거들 뿐, 그들을 입양한 반려인들의 삶에 대한 감사와 진솔한 자기 고백이 더 곡진하다.
‘미미’는 번아웃으로 칩거하던 반려인 곁에서 온기를 나누어 주었고, 노견에 장애견인 ‘육송이’는 돌보는 수고는 크지만 덕분에 남다른 행복감을 선물한다. 책 속 반려인들 목소리는 한결같다. 유기견을 가족으로 맞고 정작 행복해진 건 자신이고, 자신이 유기견을 구한 게 아니라 유기견이 자신을 구했으며, 그들로 인해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나도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라,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글보다 강하게 눈길을 끄는 것은 사진이다. 개들마다 유기견 시절 사진과 지금 사진을 나란히 놓았는데, 멀끔해진 신세는 두말할 것 없고 그들의 표정이 반영하는 극명한 대조는 사람의 손길과 사랑을 받으면 안 예쁘고 안 멋진 개가 없다는 진리를 여실히 드러낸다. 정면을 응시하는 개들의 구슬 같은 눈을 마주보노라면, 이 작은 생명체 어디에 인간을 구하는 엄청난 힘이 들어 있나 궁금하다가도 어느 순간 절로 이해되어 버린다. 책에는 내가 수리를 통해 경험한 삶의 놀라운 변화보다 훨씬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유기견을 입양한 반려인 116명의 입을 통해 증언된다. 개와의 삶이 궁금하다면, 특히 유기견을 반려하는 삶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책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1만9000원에 판매하며, 전국 도서관에서도 만날 수 있다.
혹 유기견 입양을 고려 중이라면 정말로 반가운 소식이지만 당부할 말이 있다. 개를 반려하는 것은 사랑과 행복이 내 삶 아주 가까이에 있음을 빈번히 깨닫는 일이지만, 희노애락을 제외하면 오롯이 ‘책임’이라는 결정체가 남는 일이기도 하다. 기쁨과 행복의 틈 사이사이 그만큼의 양보와 헌신도 필요하다. 또 있다. 유기견은 아픈 기억까지 보듬어야 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세상 부질없는 걱정이라고 답하고 싶다. 나를 비롯해 많은 이의 경험상 유기견들은 누구를 만나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 우리는 그저 눈을 돌려 그것을 알아보기만 하면 된다.
[글 이경헤(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사진 이층사진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7(23.5.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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