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부실채권 비율 1년來 최고···"9월 상환유예 종료땐 뇌관 우려"

조윤진 기자 2023. 5. 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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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대출 경고음]
◆ 5대 은행 남은 빚만 38조
'잠재부실' 요주의여신 6% 늘어
2018년 3분기 이후 6.4조 첫 돌파
원화대출 연체율 2년여만에 최고
700조 달하는 다중채무도 부담
4월 3일 서울의 한 시장에서 상인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제공=연합뉴스
[서울경제]

2019년부터 4년째 서비스 판매업을 하고 있는 30대 중반 자영업자 A 씨는 지난달 중순 한 시중은행으로부터 대출 원금 2000만 원을 5월까지 일시 상환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원금 상환이 어렵다고 판단한 A 씨는 은행에 6개월 만기 연장을 신청했다. 그는 “급한 불은 껐지만 지금 상태로는 6개월 후에도 돈을 갚을 자신이 없다”며 “가게는 이번 여름까지 하고 이후에는 투잡을 뛰든 취업을 하든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조치가 적용된 대출 잔액이 5대 시중은행에만 38조 원 가까이 남은 가운데 금융권에서는 9월 말 상환 유예 조치가 만료될 경우 대규모 부실이 한 번에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A 씨처럼 코로나19 이전에 돈을 빌린 자영업자·중소기업에 대해 다섯 차례나 만기 연장, 상환 유예를 해줬던 것이 무더기 부실채권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총여신 대비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24%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보다 0.02%포인트 오른 수치로 2021년 말(0.24%) 이후 최고치다. 고정이하여신은 대출금 중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인 부실채권(NPL)을 의미한다.

5대 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2020년 초부터 2022년 3분기까지 매 분기 하향세였다가 지난해 4분기부터 반등하기 시작했다. 고금리·고물가 속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연체가 본격화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은행별로 보면 NH농협은행의 NPL 비율이 1년 반 만에 0.3%대로 올라섰고 신한은행 NPL 비율도 0.28%로 직전 분기 대비 0.03%포인트 높아졌다.

문제는 부실채권으로 잡히지는 않지만 고정이하여신 직전 단계에 놓인 요주의여신, 즉 연체 기간이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인 채권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의 요주의여신은 올해 3월 말 기준 6조 4203억 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 대비 5.9% 늘어난 규모로 6조 4000억 원대를 넘긴 것은 2018년 3분기 이후 처음이다. 총여신 대비 요주의여신 비중도 약 3년 만에 0.5%대로 올라섰다.

금융권에서는 요주의여신뿐 아니라 아직 연체가 없는 정상여신도 올해 하반기부터는 빠르게 부실채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관측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6개월간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조치가 적용 안 된 채권 7조 4200억 원 중에서는 정상적으로 상환된 채권도 있지만 폐업·자본잠식 등으로 지원 대상에서 탈락한 채권도 다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 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은 올해 2월 말 기준 0.35%로 2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특히 기업대출 부문에서는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1년 전보다 줄어든 반면 중소법인 대출 연체율과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각각 0.1%포인트, 0.19%포인트씩 치솟은 0.52%, 0.39%로 집계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각종 만기 연장, 상환 유예 등으로 인해 진작에 연체로 넘어갔어야 할 채권도 현재 정상이나 요주의로 잡히는 경우가 있다”며 “이와 관련한 정부의 지원이 종료됐을 때 상환 계획을 정상화하는 데 실패한 차주도 다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각 은행이나 금융 지주회사들이 충당금을 당초 계획보다 많이 쌓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자산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은행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정부가 발표한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조치 적용 대상 대출 잔액이 전 금융권에서 141조 4000억 원에 달한 것을 고려하면 올해 3월 말 기준 5대 은행에 남은 잔액(37조 6159억 원)은 일부일 뿐 정책금융기관 및 2금융권에는 5대 은행을 훨씬 웃도는 잔액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저축은행 업권의 잠정 NPL 비율 및 연체율은 올해 1분기 말 나란히 5.1%를 넘겼다.

720조 원에 달하는 자영업자 다중채무도 전 금융권에 걸친 ‘부실 뇌관’ 중 하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3개 이상의 금융기관·상품을 통해 돈을 빌린 자영업자 수는 총 173만 명으로 이들이 보유한 대출 잔액은 자영업자 총대출 1020조 원 중 70.6%에 달하는 720조 3000억 원이었다. 한은은 다중채무 자영업자들의 경우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마다 1인당 이자 부담이 연평균 76만 원씩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가운데 각 금융권의 연체율 지표가 악화되고 있다”며 “올해 하반기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는 만큼 금융 당국은 상반기 중 세심한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 관계자는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정책은 현재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며 “다만 추가 연장 조치 등은 금융위 등 정책 당국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조윤진 기자 j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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