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공방으로 번진 CFD발 하한가 사태…금융당국은 책임 없나

허인회 기자 2023. 5. 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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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지정 요건 완화로 CFD 개인전문투자자, 2년 만에 8배↑
“두 번의 큰 비상벨에도 근본적 대책 수립 없던 것이 사태 키워”
이제야 당국 “제도상 보완 필요사항, 우선 검토해 보완하겠다”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SG증권발 하한가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한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스크린에 코스피 지수가 띄워져 있다. ⓒ 연합뉴스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가 진실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선 라덕연 H투자자문사 대표와 김익래 다움키움그룹 회장 측은 맞고소를 이어가며 소송전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책임도 작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주가조작의 통로로 사용된 차액결제거래(CFD) 상품에 대해 관리·감독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정부는 제도개선에 나서겠다는 계획이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모험자본 공급 위해 전문투자자군 육성" 독 됐나

무더기 하한가 사태의 진원지는 차액결제거래(CFD)였다. CFD는 투자자가 기초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매매 차액에 대해서만 현금 결제하는 장외 파생상품을 말한다. 최소 40%의 증거금으로 최대 2.5배까지 레버리지가 가능하다. 가령 400만원을 투자하면 1000만원의 매수 효과를 낼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가 CFD로 레버리지 투자하다가 증거금 부족으로 반대매매가 벌어지며 발생한 현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CFD를 이용한 개인전문투자자수는 2020년부터 폭등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발간한 '2022년 자본시장 위험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말 1219명에서 2018년 말 2193명, 2019년 말 3330명에 불과했던 개인전문투자자는 2020년 말 1만1626명으로 증가했다. 2021년 말에는 2만4365명까지 불었다. 덩달아 2021년 CFD 거래 규모도 70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30조9000억원) 대비 2.3배 늘어난 수치다.

CFD가 활성화된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때문이었다. 2019년 11월 금융위원회는 '새로운 개인전문투자자 기준을 투자자 보호방안과 함께 시행합니다'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금융투자업규정'과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알렸다.

당시 금융위는 '모험자본 공급 활성화를 위한 전문투자자군 육성 추진'의 일환으로 개인전문투자자 지정 요건을 완화한다고 밝혔다. 이에 당국은 개인전문투자자 지정 요건 중 금융투자상품 잔고 기준을 기존 5억원 이상에서 5000만원 이상으로 낮추고, 소득 요건은 부부합산 1억5000만원 이상, 재산가액은 10억원 이상에서 순자산 5억원 이상으로 완화했다.

개인전문투자자 진입 문턱을 낮추는 취지에 대해 당시 금융위는 "그간 국내 개인전문투자자 제도는 외국에 비해 요건이 엄격해 제도가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며 "우리 경제의 활력 제고를 위해서는 혁신기업의 성장잠재력을 보고 필요한 자금을 과감히 공급할 수 있는 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혁신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은 투자위험을 잘 인지하고 이를 감내할 능력이 있는 전문투자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정부는 전문투자자군 육성을 통한 모험자본 공급 활성화를 위해 개인전문투자자 제도의 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규제 완화는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취지와는 다르게 주가 조작 세력의 빌미를 제공하는 격이 돼버렸다. 일반투자자는 물론 국민연금 역시 피해를 보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이번 하한가 사태로 약 1500억원 가량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금융위원회 제공

'빌 황' 사태에도 레버리지 낮추는 데 그쳤던 당국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CFD 경고음'이 이미 두 차례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투자자 대표 단체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지난 1일 "3년 전 2020년 코로나19 때 코스피가 1457까지 내려갔을 때도 CFD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며, 2년 전 '빌 황' 사태 때도 CFD가 증시 뇌관이 될 수 있었다는 여론이 있었다"며 "두 번의 큰 비상벨이 울렸음에도 근본적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넘긴 것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빌 황' 사태는 2021년 미국에서 한국계 펀드매니저 빌 황이 CFD 등 파생상품을 통해 보유재산의 5배인 500억 달러(약 63조원) 상당을 주식 투자에 나섰다 파산한 사건이다. 지난달 스위스 투자은행 UBS에 매각된 크레디트스위스(CS)의 경우 손실 규모가 55억 달러(약 7조원)에 달했다.

'빌 황' 사태가 발생하자 시장에서는 CFD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쏟아졌다. 하지만 당국은 최소 증거금률을 10%에서 40%로 올리는 대책을 내놓는데 그쳤다. 

국회에서도 CFD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증권사 최고경영자 출신인 홍성국 민주당 의원은 2021년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특정 증권사를 중심으로 CFD 잔고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며 CFD 관리 중요성을 피력했다. 이에 당시 정은보 금감원장은 "장외파생상품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의 시장에 대한 규제 문제는 계속적으로 검토해 나가도록 하겠다"는 답변했다. 이후 금감원은 'CFD 최저증거금률 40%' 행정지도를 오는 9월 말까지 연장하는 조치를 하는데 그쳤다.

한편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수사 결과를 토대로 CFD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CFD 증거금 최소 비율(현행 40%) 상향 △전문투자자 자격 요건 강화 △CFD 만기 도입 및 잔고 공시 등이 거론된다. 2일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 당국 관계 임원회의를 개최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CFD의 제도상 보완 필요사항을 우선 검토해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선제적으로 보완하고, 추후 조사결과에 따라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밝혀지면 추가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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