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전 심문’ 두고 법원·검찰 다시 충돌

양은경 기자 2023. 5. 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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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왼쪽)과 대검찰청 전경. /뉴스1

판사가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사건 관계인을 심문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대법원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두고 검찰과 법원이 다시 맞붙었다. 이 개정안은 판사가 구속영장처럼 압수 수색 영장 발부를 결정할 때 당사자를 법정에 불러 직접 설명을 들을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2월 형사소송법의 하위 법령인 형사소송 규칙 개정안에 이 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아 입법예고 했는데 당시 검찰은 “수사의 밀행성을 침해해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공개 반박한 적이 있다.

법원행정처는 1일 전국 영장전담 판사가 참여하는 온라인 간담회를 연 뒤 이런 검찰의 의견을 재반박하는 내용의 입장을 2일 공개했다. 정재우 법원행정처 형사지원심의관 59쪽 분량의 발제문에서 최근 10년 간 검찰의 압수 수색 영장 청구가 급증했고, 선별 없는 압수 수색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우려 탓에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발제문에 따르면 압수수색영장 청구는 2011년부터 2022년 사이에 10만 8992건에서 39만 6671건으로 약 363% 늘었다. 같은 기간 체포영장 청구는 5만 9173건에서 2만 7426건으로 오히려 53%가량 줄었다.

늘어난 압수수색 영장 대상의 상당 부분은 휴대전화나 컴퓨터, 서버에 저장된 전자정보인데 현재 관련 규정은 대부분 일반 물건을 상대로 한 것이어서 전자정보 압수수색에 대한 적절한 통제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심의관은 특히 수사정보 외부유출 우려 등 검찰의 비판에 대한 재반박에 발제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이는 심문 대상이 ‘피의자’라는 오해에 기초한 것으로, 대면심리 대상은 통상 영장을 청구한 수사 기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 여부를 심리하다 영장 범위나 대상에 대한 의문점이 생겼을 때 청구 주체인 수사기관에 대해 비공개로 심문하기 때문에 수사 기밀 누설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법률이 아닌 대법원의 내부 규칙인 형사소송규칙을 통해 심문절차를 제정하는 데 따른 ‘위헌 논란’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당사자 출석을 강제하거나 안나오면 구인할 수도 있는 형태의 심문이 아니기 때문에 법률 형식이 아니어도 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규칙 제정이 현재 진행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수사나 앞으로 진행될 수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에서 ‘방탄’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정 심의관은 “실무와 학계의 장기간 논의에 기초한 2021년 10월 사법행정자문회의 결정을 토대로 진행된 것일 뿐 그에 관해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다”고 했다.

◇검찰 “법원의 통제 오히려 강화, 심문하면 절차 지연돼” 재반박

대검은 이날 오후 자료를 내고 이 같은 주장에 반박했다. 대검은 압수 수색 영장 청구가 급증했다는 지적에 대해 “과거 영장 없이 수집했던 증거에 대해서도 현재 영장을 발부 받아야 압수할 수 있기 때문에 영장 발부 건수가 증가한 것”이라며 “수사기관의 활동에 대한 법원의 통제가 오히려 강화된 것”이라고 했다.

대검은 그 예로 포털사이트 가입자 인적사항이나 CCTV영상, 상품권 사용 내역 등을 들었다. 과거에는 정보 관리자로부터 임의로 제출받던 증거들이었지만 현재는 모두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정식으로 압수한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2년간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영장에 대한 검사 기각률이 11%라는 점도 들었다. 경찰 신청 단계에서 이미 한번 사법통제를 통해 ‘거른’ 영장을 청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발부율이 높다는 것이다.

대검은 또한 “법원의 입장은 압수의 전 단계에서 이뤄지는 수색 자체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라고 맞섰다. 압수할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옷장, 서랍을 열어보는 작업이 필요한 것처럼 정보 저장 위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휴대폰 자체에 대한 탐색을 막는다면 압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증거인멸 우려가 적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대면심리가 진행되는 이상 기일지정 후 소환통지, 기일진행, 심문조서 작성 등으로 절차 지연은 필연적”이라며 “절차 진행에 관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절차기 길어질수록 수사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증거가 인멸될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행정처가 간담회 발제문을 공개한 데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한 검찰 관계자는 “해당 발제문은 영장실질심사 전담 판사들의 의견이 모아진 게 아니라 행정처의 일방적 주장을 담은 데 불과하다”며 “행정처가 법원 내부에서도 의견수렴이 있었다고 주장하려면 규칙에 대한 영장전담 판사들의 토론 내용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라”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당초 6월 1일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예고한 바 있지만 검찰 등에서 반발이 이어지면서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검찰 뿐만 아니라 대한변호사협회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지난달 이 제도와 관련해 ‘수사 기밀 유출 우려가 있다’는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행정처 관계자는 “6월 초에 이 개정안과 관련해 한국형사법학회와 공동학술대회를 연 뒤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후속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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