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분절화의 시대, 亞 국가들이 보호무역주의 확산 막아야”
“코로나 이전, 이후 가르는 건 신냉전·탈세계화”
“글로벌 제조·무역 중심인 아시아는 특히 불리”
“아태지역 내 정책·무역·디지털 연계성 높여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분절화와 공급망 와해 기조가 전 세계에 확산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를 계기로 인천 송도에 모인 아시아 경제계 인사들은, 이런 분절의 확산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유독 취약하다고 평가하며 ‘지역 내 정책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천 송도에서 2일 열린 제56차 ADB 연차총회에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관하고 기획재정부·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공동 개최한 ‘한국 세미나의 날’이 진행됐다. 포럼 형태의 이 행사는 이번 행사 주제인 ‘다시 도약하는 아시아: 회복, 연대, 개혁(Rebounding Asia: Recover, Reconnect and Reform)’을 논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 “탈세계·분절화 구도, 아시아가 가장 취약”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복합위기’(Polycrisis)라고 입을 모았다.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사와다 야스유키 일본 도쿄대 교수는 “아시아의 더 밝은 경제 전망을 바라보기 위해서 걸림돌이 되는 복수 리스크가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미국·유로존의 통화정책 긴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유럽 지역 은행 위기가, 장기적으로는 고령화, 기후, 다양성, 포용성 등의 문제가 꼽힌다”고 평가했다.
이런 리스크들은 무엇보다 코로나로 인한 ‘탈세계화’ 현상이 촉발한 측면이 크다.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코로나 이후 시기는 이전 시기와는 매우 다른데, 이는 신냉전 또는 탈세계화로 표현되는 국제 질서 변화가 급속히 이뤄져서다”라며 “한마디로 ‘대전환기’로 지칭할 수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아시아 지역은 이런 구도에서 가장 불리한 곳이라는 시각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아시아 지역은 글로벌 제조와 무역의 중심인 만큼 세계 경제의 분절화에 매우 취약하다”고 언급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10월 작성한 ‘아태지역 경제전망 보고서’는 “양대 블록으로 무역 분절화를 가정한 시나리오 영향을 분석할 때 장기적으로 연간 전 세계 경제성장률(GDP)의 1.2~1.5%가 손실되고, 아태 지역은 이보다 더 큰 1.5~3.3%의 손실을 보는 것으로 분석됐다.
◇ “‘제로섬 세계’ 살고 있지 않아… 공조·협력 강화”
이에 추 부총리는 역내 연계성 강화를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세미나의 날 개회사를 통해 “글로벌 불확실성 확대에 대응해 역내 금융안전망(CMIM)의 실효성 제고 등 역내 정책 연계성 및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며 “세계 경제의 분절에 대응해 글로벌·역내 무역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역내 디지털 연계성도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분절화를 극복하기 위한 주요국의 노력도 소개됐다. 투 용홍 중국 인민대학교 교수는 “중국은 외국인직접투자(FDI) 관련 규제를 대폭 축소·완화했고, 무역과 투자의 원활함을 위해 21개의 자유무역시범구를 도입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며 “이런 국경 간의 자본 흐름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사한 위기를 먼저 겪은 국가들을 선례 삼아 정책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사와다 교수는 “아시아 국가들이 앞서 극심한 고령화를 겪은 일본의 선례를 통해 공적연금 도입 등 선제적 정책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현재 중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의 고령화와 유사한 상황을 겪고 있는데, 효과적인 정책 대응을 위해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조 대담을 맡은 마이클 크레이머 시카고대 교수 역시 비슷한 취지의 언급을 했다. 그는 ‘오링이론’(O-ring Theory)이라는 경제학 이론을 발표해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바 있다. 이날 오후 송도 컨벤시아 미디어센터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신냉전 시대에서의 아시아 국가들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크레이머 교수는 “(정치과학자가 아닌 경제학자 관점에서 보면) 과거 미국과 소련이 정치적 라이벌이던 냉전 시기에도 협력이 있었다”며 “경제학이 가르쳐주는 건 우리가 제로섬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 무역 등 공동행동을 통해서 협력하면 모두가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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