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녹음 파문’ 전례 보니 공천·선거전략 논의도 유죄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에게 내년 총선 공천을 거론하며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안을 옹호하는 발언을 요청했다는 태 최고위원의 음성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정치권에선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법원·검찰은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선거 개입 금지 의무와 관련된 사안을 엄중하게 다뤄왔다.
공직선거법 제9조는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한다. 제47조2항은 “정당이 후보자를 추천하는 때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해 외부의 개입을 차단하고 있다. 그러면서 공무원이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관여하는 구체적 행위를 했을 때 처벌하는 여러 조항을 두고 있다.
공천 개입으로 처벌된 대표적인 사례가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다. 박씨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에도 청와대 정무수석이 논란의 중심이었다.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이 친박 인물들의 총선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선거전략을 수립하고 박씨는 이를 승인·공모한 혐의를 받았다. 현 수석이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에 관여하고 친박 의원들과 선거전략을 논의한 사실도 박씨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박씨는 단순히 총선 판세를 분석하기 위해 관행적으로 여론조사를 했고, 정무수석실이 내부용으로 선거전략을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같은 행위가 ‘총선 이후 원활한 국정수행을 위해 친박 인물들을 다수 당선시켜야 한다’는 박씨의 인식과 의지에서 비롯됐다면서 공모를 인정했다. 이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일 때 기소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 수사해 재판에 넘긴 이른바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도 공천이 문제였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송철호 전 울산시장의 경쟁자였던 김기현 현 국민의힘 대표 관련 비위 첩보를 경찰에 이첩한 것이 선거 개입이자 하명 수사라는 게 혐의의 골자이다.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현재 국회의원)은 송 전 시장의 경선 경쟁자에게 공공기관장직 등을 제안해 출마 포기를 종용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 사건 재판에서 “선거는 대한민국 공정·정의 실현의 무대이고 공직선거법은 그 룰”이라며 “그 무대 위에서는 아무리 작아보이는 것도 못 받는 사람에게는 불공정의 씨앗이 되고, 대수롭지 않은 것도 당하는 사람에게는 독이 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수사팀장을 맡았던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댓글 대선개입 사건은 국가기관의 조직적 선거 관여가 인정된 사건이다. 댓글을 단 게 불법 선거운동인지가 쟁점이었는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정원의 인적·물적 자원이 동원됐다며 선거법 위반 유죄를 확정했다.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혹은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선거법 제85조가 적용됐다.
선거법은 정당의 후보자 추천과 관련해 ‘금품이나 그 밖의 재산상의 이익 등’을 제공했을 때 처벌하는 조항도 있다. 2009년 비례대표 공천 헌금 사건으로 법원에서 실형을 받은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 대표가 그 예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의 경우 18대 총선 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비례대표 국회의원 자리를 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뇌물)가 유죄로 인정됐다.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에서 선거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에 표를 줄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정말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가 탄핵심판대에 올랐다. 헌재는 탄핵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면서도 결정문에서 “선거에 있어서 정치적 중립성은 행정부와 사법부의 모든 공직자에게 해당하는 공무원의 기본적 의무”라며 “공무원이 공직자 지위에서 행동하면서 공직이 부여하는 영향력을 이용했다면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고 이로써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는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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