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중동의 변화, 우리에겐
두리뭉실한 당위적 접근이나
경제 잇속 챙기기만으론 안돼
중동이 빠르게 변하며 세계를 놀라게 한다. 과감한 개혁 개방을 선언한 산유 왕정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변화의 주역이다. 이들은 제한적이나마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이스라엘과 깜짝 놀랄 연대를 결성하고 권위주의 국가 이란, 튀르키예와 불꽃 튀는 탐색전 속 해빙 무드를 주도하며 취약한 독재국가 시리아, 예멘, 리비아의 내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또 새로운 외교 안보 정책을 무슬림 혼인에 비유하며 미국과의 우방 관계에만 기대지 않고 구시대적 민족주의에서도 벗어나겠다고 천명했다.
중동의 변신은 긍정 신호다. 걸프 산유국은 정권 생존을 위해 개혁을 택했고 개혁 성공의 걸림돌은 과도한 정치적 열정이 부추기는 불안정과 무질서이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가 올인한 국가 체질 개선 프로젝트는 냉철한 경제 실용주의에 기댈 수밖에 없기에 혼란스러워 보이던 역내 각축전은 곧 잠잠해졌다. 개혁을 택한 순간 협력과 안정이 따라왔다. 긍정적 변화의 바람이 미치지 못한 어두운 곳도 있다. 중동에선 10여 년 전 시민혁명으로 독재정권 다수가 무너졌으나 민주주의는 쉽게 오지 않았다. 전조 없이 극적으로 몰락한 독재정권의 빈자리를 무늬만 다른 독재정권이나 장기 내전의 비극이 채웠다. MZ세대 빌런이 앞다투어 가입한 초국제 기업형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도 중동의 위기 요소다.
멀게만 느껴지는 중동의 깜짝 변화와 고질적 위험 요소에 우리가 민감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중동은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중요하다. 2022년 기준 세계 7위 에너지 자원 소비국인 우리는 수요의 75%를 중동에서 수입한다. 해외 건설 계약의 60%가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경협 추세는 이곳의 탈석유 산업 다각화 프로젝트로 옮겨갔다. UAE는 중동을 넘어 글로벌 혁신국가로 질주해왔고 사우디가 공개한 최첨단 미래도시 네옴 프로젝트는 세계인의 상상력을 뒤흔들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650조원에 달하는 네옴 수주전에는 많은 나라의 쟁쟁한 회사가 앞다투어 뛰어들었다.
중동은 우리 외교 역량의 리트머스시험지이기도 하다. 우리의 중동 정책은 제 경제 잇속 챙기기라는 평가를 종종 받았다. 아직은 신흥 선진국이라 우리만의 정책을 개발 중이라고 둘러대지만 말하고 듣는 이 모두 불편하다. 우리 사회 내 중동 출신 이민자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 알려질까 봐도 조마조마하다. 국내에선 자유주의 질서를 지지하는 중견국 외교정책은 당장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경제 이익과 상충할 수 있어 인기가 별로 없다. 그런데도 중동 위기가 발생하면 G20 국가인 우리는 인도적 지원금을 내고 평화유지활동(PKO)을 해야만 한다.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분담해야 할 몫이다.
이에 더해 시리아 부자 세습체제의 생존, 중동 독재의 극적 몰락, 이란과 리비아의 핵개발, 시리아·이란·러시아·중국의 연대 강화가 한반도 의제에 주는 함의를 곱씹어 볼 수 있다. 또 우리 국민은 해외 곳곳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여행하기에 중동의 혼란은 국민의 안전과도 밀접히 연결된다.
중동의 이해는 코즈모폴리턴이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해외여행, 워킹 홀리데이, 유학으로 우리 젊은 세대는 세계 시민으로 성숙했다. 한반도에만 있자니 위에선 미사일 발사, 옆에선 경제 보복과 역사 왜곡에 답답한 건 당연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동료가 한국 거주 무슬림이 모스크를 지으려는데 왜 지역 주민이 결사반대하냐고 물어오면 논리적 의견을 밝혀야 할 때도 왔다. 우리 안의 중동과 이슬람 세계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 대해 두리뭉실한 감성과 당위에 치우친 피곤한 구호가 아닌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서 말이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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