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덕칼럼] 사진 한 컷
한미동맹 70주년을 상징할
놀랄 만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제 윤·기시다 차례다
워싱턴 시내를 돌아다니는 택시에서 한국 대통령이 부른 노래가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왔다. 1분 남짓 되는 짧은 시간, 국빈 만찬장에서 터져 나온 환호와 기립 박수. 노래를 마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왼손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어깨를 감싸고 그의 오른손을 꼭 잡고 치켜올렸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정상회담 전에 말했다. "이번 국빈 방문에서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가져와야 할 게 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상징하는 사진 한 컷. 그게 어쩌면 핵억제 강화 문서보다 훨씬 강력한 메시지를 전 세계에 던질 것"이라고. 바로 그 사진 한 컷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정상회담이란 게 원래는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되고 세밀하게 조율된다. 당연히 그래야 할 이벤트인데 즉흥적으로 보이는 대목이 연출됐다. 바이든 부부의 요청에 윤 대통령이 못 이기는 듯 마이크를 잡고 한 소절 뽑았다. 돈 매클레인이라는 미국의 대표적 싱어송라이터가 1971년에 발표한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였다. 그 노래가 46살의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사망한 바이든 대통령 아들이 어렸을 때 좋아했다는 사실도 어쩌면 몰랐을 것이다. 다만 어떤 의미인지는 십분 알고 불렀음에 틀림없다. 학창 시절 18번이었으니.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가 옆에 있던 한국 인사에게 말한 그대로 아메리칸 파이는 미국의 상징곡(Iconic Song)이다.
3분 정도 길이의 노래가 대세를 이루던 시절 무려 8분27초에 달하는 긴 노래가 방송을 탔다. 6절이나 되는 노래 가사가 온통 은유와 상징, 그리고 모호한 문장으로 범벅된 노래. 이 파격적이고 난해한 노래가 왜 미국적인가. 매클레인은 자세한 곡 해석을 회피했다. 그냥 듣는 사람 마음 내키는 대로 이해하는 곡. 그러나 단초는 있다. 윤 대통령이 노래한 마지막 소절. '음악이 죽은 날(the day the music died)'이다. 1959년 2월 3일 매클레인의 우상이자 록의 거인인 버디 홀리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그의 나이 22세.
홀리의 죽음이 곧 미국의 죽음이었다. 매클레인에게 그건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가르는 기준점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970년 그 당시를 회고한다. 1960년대 미국 사회는 병들고 있었다. 베트남전쟁으로 나라는 두 쪽이 나고 속물 문화가 판을 친다. 당시 미국의 음악계는 한마디로 '영국 침투(British Invasion)'였다. 비틀스를 시발로 롤링스톤스, 딥퍼플, 레드제플린, 그리고 퀸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없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가고 희망을 걸었던 홀리마저 꽃다운 나이에 사망했다. 음악이 죽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5절에 나오는 가사 한 대목에 모든 게 압축돼 있다고 평한다. '다시 시작하기엔 시간이 남지 않은, 우주 공간에서 잃어버린 세대(A Generation Lost in Space with No Time Left to Start Again)'. 그게 매클레인이 노래로 보여주고자 한 1960년대 미국이었다. 미국은 1970년대 들어 타락과 좌절의 10년을 청산하고 1950년대 영광과 순수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열망이 분출한다. 그 시기에 매클레인의 '아메리칸 파이'가 나왔다.
윤 대통령이 이 노래 탄생 배경이 지금 미국의 상황에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한국의 처지를 이 노래에 오버랩시켰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나는 절묘한 선곡이라고 생각한다. 기획이라면 실력이고 우연이라면 대박이다. 나흘 후면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한국을 찾는다. 한미정상회담의 가시적 성과 중 하나다. 이른바 타초경사(打草驚蛇).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듯 미국을 건드려 일본을 놀라게 했다. 그 연장선에서 일본에 주문 하나를 해본다. 다름 아닌 사진 한 컷이다. 한국과 일본 국민의 감정선을 건드릴. 훗날 역사가 한일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할 그런 장면. 그런 걸 찾는 게 실력이다. 그게 외교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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