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톡]간호법이 대체 뭐길래… '쪼개진' 의료계
당정 제시한 중재안 놓고 부처 간 이견도
간호법 제정안과 중범죄를 저지른 의료인 면허를 취소한다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의사면허취소법)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이달 3일과 11일 연가와 단축 진료 등 부분파업에 나서고, 간호법 재논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오는 17일 연대 총파업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의료연대에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의사단체는 간호법 제정안이 '지역사회 간호'라는 표현으로 간호사들의 단독 개원 길을 열어줬다며 강력 반대하고 있다. 또한 의료인 결격·면허취소 사유를 '범죄 구분 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로 확대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반발하고 있다. 간호조무사단체는 현 의료법 그대로 간호조무사 자격을 '고졸'로 제한한 것과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해 업무를 수행'한다고 돼 있는 부분을 문제 삼고 있다.
◇ 의사·간호조무사, 간호법 제정 반발 이유는
간호법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적으로 시행된다면 의료 현장의 여러 직역 중 '간호'만을 규정한 첫 번째 법령이 된다. 기존에는 간호사 업무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 등과 함께 의료법에 규정돼 있었다. 또 현행 의료법상 간호사의 임무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등으로 한정됐다.
간호법 제정안 제1조에서 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제정 목적이 담겼다.
이처럼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사 관련 규정을 따로 떼어내 분리한 이유는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돌봄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지금의 법 체계와 실제 간호사들의 업무내용 사이 괴리가 크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대한간호사협회는 "초고령인구가 늘고 만성질환자가 증가함에 따라 보건의료 패러다임을 간호·돌봄체계로 전환하고자 간호법이 필요하고, 이는 국민을 위한 민생법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의사단체 등은 간호법 제1조에 있는 '지역사회' 문구를 문제 삼고 있다. 이 문구를 토대로 향후 간호사가 단독 의료행위, 단독 개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요양원이나 가정간호센터 같은 지역사회를 간호 활동영역으로 명시한 법을 제정한 다음, 일부 개정을 통해 단독 개원을 노리는 것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고졸'로 묶어둔 간호법 조항의 수정을 주장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 논의 과정에서부터 간호조무사들은 자격 기준을 '고교 이상 졸업자'로 확대할 것을 요구해 왔다. 충분한 의료 지식·훈련을 갖추려면 간호조무사 양성을 위한 2년제 대학 학과 등이 신설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의료법은 간호조무사의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고교 졸업자'로 제한하는데, 간호법 역시 동일하다.
응급구조사협회도 의료기관에서 이탈한 간호사들이 대거 119 구급대나 소방공무원직에 지원하면서 일자리가 줄고 있는데, 간호사의 지역사회 진출이 늘어나면 이런 상황이 더 심해질 것을 우려한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간호법의 이름을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로 바꾸고 제1조 조항의 '지역사회' 문구를 지운 중재안을 마련했다.
◇ 교육부, '전문대서 간호조무사 양성' 반대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단체를 대상으로 중재안 수용을 설득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내에서도 이견을 노출하고 있다. 교육부가 전문대에서 간호조무사를 양성할 수 있도록 한 간호법 중재안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이 지난 11일 제시한 간호법 중재안에는 '간호조무사 학력 요건을 특성화고 이상으로 명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내용이 시행된다면 전문대에서 기존에 양성하고 있던 간호사에 더해 간호조무사도 추가로 양성할 수 있게 된다. 보건행정과 등에서 간호조무사 과정을 운영하거나, 간호조무학과를 신설하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문대에서 교육을 받은 간호조무사는 그만큼 더 전문성을 갖출 수 있고 이는 곧 국민 건강에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전문대에 간호조무학과를 설치할 경우 과잉학력으로 인한 사회적 낭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간호법 중재안에 반대 입장이다. 교육부는 특히 전문대에 간호학과 외 간호조무학과가 추가로 설치되면 같은 학교급 안에서 학과 간 위계가 생긴다는 점을 우려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해서 환자에 대한 간호 및 진료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인력이다. 전국 56개 특성화고와 600여 민간 간호학원(고졸) 등에서 양성되고 있다. 간호조무사협회는 4년제 대학 보건·의료 관련 학과를 졸업해도 응시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고졸학원 출신 간호조무사만 양성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자격 조항은 개인의 응시 자격을 제한한 것이 아니라, 양성 기관의 학교급을 명시한 것이므로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자도 원하면 간호조무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 정부여당 거부권 무게…"결정 쉽지 않을 듯"
13개 보건의료단체가 참여하는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 두 법안 국회 본회의 통과에 따라 총파업 등 강경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현장 의료공백에 따른 부정적 여론을 감안해 부분 파업으로 선회했다. 의료연대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면서 단식 투쟁과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는 그 법률안을 재의에 붙이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재의결해야 한다. 현재 국민의힘 의석수가 115석인 점을 고려하면 재의결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거부권 행사가 간단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간호법 제정을 찬성하는 대한간호협회 측의 요구도 크기 때문이다. 간호법 제정안은 이달 초 정부로 이송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는 그로부터 15일 이내 이뤄져야 한다. 일정상 오는 9일 또는 16일이 유력하다. 현재로선 16일 국무회의 때 거부권 행사 안건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거부권에 힘을 싣고 있지만, 결정이 쉽지 않다. 특히 간협은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언급했던 사안임을 강조하며 간호법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간호법이 거부될 경우 간호계는 극렬한 저항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인해 간호계와 여당과의 관계 파탄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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