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파문’ 일파만파…“용산이 당 우습게 본다”

[국민의힘 권력투쟁]

미국 국빈방문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4월30일 오후 서울공항에 도착해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등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에게 한-일 문제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해달라고 요청하며 공천을 거론한 음성 녹취가 공개되면서 후폭풍이 일고 있다. 당사자들은 일제히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는데, 당 안에서는 친윤 지도부가 대통령실에 휘둘리는 단면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진복 수석은 2일 용산 대통령실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천은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일본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전날 <문화방송>(MBC)은 태 최고위원이 지난 3월9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보좌진에게 “(이진복) 정무수석이 ‘민주당이 한-일 관계 갖고 대통령 공격하는 것에 최고위원회 쪽에서 한마디 말하는 사람이 없느냐’고 했다”며 “‘최고위원으로 있는 기간에 마이크를 잘 활용해, 매번 (내가)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오늘 이렇게 (발언) 했습니다’라고 정상적으로 (보고가) 들어가면 공천 문제 그거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한 음성 녹취를 공개했다. 태 최고위원은 보도 직후 “이 수석이 한-일 관계나 공천 문제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했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2일 오후 국회에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예방한 뒤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 지도부 역시 이 문제를 ‘설화’가 잦은 태 최고위원의 개인적 일탈로 돌리며 쉬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김기현 대표는 “태 최고위원이 거짓말했다고 하지 않나. 본인이 과장했다고, 자기가 부풀렸다고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당 안에서는 이번 일로 “제주 4·3은 김일성 지시로 촉발” 등의 발언을 해 전날 당 윤리위원회 징계 선상에 오른 태 최고위원이 더 엄한 징계를 받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있다.

그러나 태 최고위원의 발언을 살펴보면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태 최고위원은 3월 최고위원회에서 한-일 관계와 관련해 세 차례 연속 윤 대통령을 추어올리고, 민주당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일제 강제징용 해법과 한-일 관계 문제 관련해 민주당은 국익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공세만 이어가고 있다”(3월13일), “윤 대통령의 구상권 포기 결정은 대국적 결정이다”(3월16일), “윤 대통령이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방일 성과를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돼 있다”(3월20일)고 했다.

당 안에서는 이번 사건이 친윤 일색의 지도부를 여의도 출장소 취급하는 대통령실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말이 나온다.

한 영남 중진 의원은 “능히 했을 법한 얘기다. 내각이든 용산이든 모두 당을 우습게 보는 분위기 아니냐. 당 지도부가 친윤 일색이고, 친윤이 예스맨들이니까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이걸 고치지 않으면 내년 총선은 실패다.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초선 의원은 “(태 최고위원의 주장대로) 녹취가 과장이든 아니든 어쨌든 최고위원조차도 그만큼 용산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얘기 아니냐”며 “최고위원이 그 정도인데 다른 의원들은 어느 정도겠냐”고 말했다.

수사를 요청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실의 불법 공천개입이 아닌지, 검찰과 경찰은 신속·공정하게 수사할 의무가 있다”고 적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