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벽화처럼 원초적 에너지 발산
마르타 융비르트 개인전
타데우스로팍 서울서 펼쳐
누런 베이킹 종이 위에 거친 형상이 얼룩과 함께 남았다. 여백이 가득한 그림은 동양 서예가의 흘림 글씨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그리스신화와 인간의 역사에 매료됐다. 다양한 여행 경험과 신화나 역사에서 모티브를 얻고 당대 재난이나 고통 등을 본인이 느낀 대로 추상과 구상 구분이 모호한 종이 회화로 펼쳤다. 마치 동굴벽화를 남긴 원시인처럼 단순한 색과 거친 형상으로 에너지를 뿜어낸다.
오스트리아 빈 태생 여성 작가 마르타 융비르트(83)가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국내 첫 개인전 '염소 눈 마주하기'를 열고 있다.
작가는 1988년 '내 안의 유인원(The Ape in Me)'이라는 예술 선언문을 통해 "회화는 구어 이전, 기억 이전, 물체 식별성 이전의 직관적인 공간에 자리한다"고 밝혔다.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 해석을 거부하고 즉흥적이고 감각적 인식을 우선한다는 지향점을 선언한 것이다. 그의 회화에 붓질보다는 얼룩이나 스크래치, 손가락 자국 등 흔적이 두드러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이미 존재하는 종이 위에 '사건'처럼 벌어지는 그림을 만드는데 캔버스 대신 오래된 회계장부, 액자 판지, 베이킹 종이 등이 사용된다.
작가는 "30여 년 전 회계장부를 선물받았다. 가로세로 빡빡한 선들 사이에서 얼룩을 묻혀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때부터 깨끗하고 비싼 종이보다는 누군가 써서 일종의 역사를 품은 종이가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얼룩과 선에서 시작하는 것은 예전과 똑같지만 나이 들면서 다른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변형하고 끊임없이 그 과정을 개선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최근 그가 꽂혀 있는,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19세기 초 작품 '정어리의 매장'에서 비롯된 작품 3점을 선보였다. 기독교 사순기간 전 재의 수요일(聖灰日) 사육제 장면의 하얀 옷 이미지에서 작가가 느낀 에너지를 표현했다.
작가는 볼프강 헤르치히 등과 함께 예술가집단 'Wirklichkeiten'을 공동 창립해 유일한 여성 회원으로 활동했다. 오스카 코코슈카 상(2018)과 최고 권위의 표창인 오스트리아 국가 대상(2021)으로 평생 예술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전시는 6월 10일까지.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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