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서세원 발인, 당혹스러움과 의문을 남긴 굴곡의 삶[스경X초점]

하경헌 기자 2023. 5. 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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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출신 사업가 고(故) 서세원 씨의 빈소가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사진공동취재단



향년 67세. 성과만큼 과오도 많았던 굴곡진 삶은 그렇게 마감됐다. 지난달 20일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코미디언 故 서세원의 발인이 2일 엄수됐다. 고인은 사망 전 절연관계였던 딸 방송인 서동주 등 가족과 친인척, 지인들의 배웅을 받고 영면에 들었다.

고인의 발인은 이날 오전 8시 유해가 안치된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서동주를 비롯한 세 자녀와 부인 김모씨 그리고 남동생과 이복 여동생, 외조카가 상주로 이름을 올렸다.

발인식은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진행됐다. 엄영수 협회장이 추모사를 맡았고 김학래가 사회를 봤다. 발인식에는 고인의 사망 전 이미 절연을 했다고 밝혔던 딸 서동주도 참석했다.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개그맨 고 서세원 씨의 영결식에서 고인의 딸 서동주씨가 발인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날 가족대표로 나선 서동주는 “딸 서동주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조문객에 감사했다. 그는 “아빠와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은 함께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 자리를 지켰다”며 “찰나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 잊지 않고 은혜를 갚으면서 살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30일부터 차려진 빈소에는 코미디언 김학래, 조혜련, 박성광, 이용식, 정선희, 김혜선, 서태훈 등 희극인 선후배 동료들과 가수 이동구, 남궁옥분, 설운도 등이 추모를 하거나 화환을 보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주진우 기자 등 정계, 언론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고인의 유해는 충북 음성 무지개 추모공원에 묻혔다. 시신은 애초 한국으로 운구될 예정이었지만 고인이 사망한 캄보디아 지역 사원의 냉동 안치실 시설이 열악해 현지에서 화장절차를 따랐다.

개그맨 고(故) 서세원씨의 발인이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연합뉴스



갑작스러운 사망이었고, 사망 장소 역시 의외의 장소였기에 그의 사망과 관련한 많은 의혹이 따랐다. 실제 한 매체의 현지 취재로 인해 프로포폴 투약 여부와 현지 병원이 정맥주사를 놓을 만큼 합법적인 의료기관이었는지에 대한 의혹이 일어났다.

결국 유족들은 지난 28일 입장문을 내고 “24일 캄보디아 현지 경찰로부터 고인이 당뇨병으로 인한 심정지로 사망했다는 검안 결과가 기재된 사망 증명서를 교부받았다”면서 “여러 정황상 사망 사유를 쉽게 납득할 수 없어 캄보디아 경찰 측에 여러 수사 정황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졌다. 결국, 현지 안치 사정과 운구절차의 지체로 시신의 온전한 보존이 어렵다고 판단해 현지에서 화장했다”고 밝혔다.

사망과정에 있어 그 원인과 의구심은 대중은 물론 유가족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화장을 택하면서 진실규명의 기회는 사라졌다. 사망과 장례절차에서도 굴곡이 계속된 셈이다.

1979년 TBC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한 서세원은 MBC ‘청춘행진곡’ ‘일요일 일요일 밤에’, KBS2 ‘서세원쇼’ 등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토크 버라이어티 진행자로 이름을 날렸다. 1981년 서정희와 결혼해 1남1녀를 둔 스타부부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2009년 주가조작 및 회사자금 횡령으로 인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선고를 받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후 목회자로 변신했지만 2015년 아내인 서정희를 상습폭행한 혐의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이 과정에서 공개된 폭행영상으로 대중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후 서정희와 합의 이혼한 고인은 이혼 1년 만인 2016년 23살 연하 해금연주자와 결혼해 자녀를 뒀다. 현지에서 각종 사업을 통해 사업가로서 제기하려고 했지만, 그의 마지막은 정체가 불분명한 의료시설에서의 수액투여였다. 각종 의혹으로 추락했고 마지막까지 의혹과 함께 떠난 고인은 대중에게 결국 어두운 기억으로 남게 됐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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