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1년2개월 만에 3%대로…‘경기 부양’까지는 먼 길
근원물가 여전히 높고 환율-공공요금 인상도 변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지난해 6%대까지 치솟았던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년여 만에 3%대로 내려왔다. 물가 전반을 밀어올렸던 유가가 안정세를 보인 영향이 크다. 물가 상승세가 일단 주춤해지면서 정부 정책의 초점도 ‘물가 안정’에서 ‘경기 부양’로 돌아설지 주목된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3.7% 올랐다. 국내 물가 상승폭이 3%대를 기록한 건 2022년 2월(3.7%) 이후 1년2개월 만이다. 여전히 5%를 웃도는 고물가와 씨름하는 미국, 유럽 국가들에 비해 물가 오름세가 비교적 빨리 꺾인 셈이다.
물가 상승 둔화를 이끈 건 에너지 가격이다. 지난달 휘발유·경유 등 석유류는 전년 대비 16.4% 급락하며 전체 물가 상승률을 0.9%포인트 끌어내렸다. 비교 시점인 지난해 상반기 기름값이 워낙 높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가 작용한 것이다. 실제 지난해 4월 두바이유 평균 가격은 배럴당 102.7달러로, 올해 4월(83.8달러)보다 22.6%나 비쌌다. 먹거리 중심의 농축수산물도 지난달 1% 오르는 데 그치며 물가 둔화에 영향을 미쳤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7월 6%를 돌파하며 고점을 찍고 3%대로 다시 내려오기까지 9개월이 걸렸다. 물가 상승률은 2021년 10월(3.2%)에 9년8개월 만에 최초로 3%를 넘어섰고, 지난해 3월 4.1%, 6월 6%, 7월에는 6.3%까지 상승폭이 확대됐다. 그러나 이후 오름세가 주춤하며 올해 들어선 2월 4.8%, 3월 4.2% 등으로 상승폭이 낮아졌다.
우리나라 고물가 기세가 주요국보다 먼저 꺾인 건, 유럽·미국에 견줘 우리 물가는 국제 에너지 가격의 일시적 변동성에 훨씬 크게 반응하는 반면, 수요 압력에 따른 지속적 물가 상승 요인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유류세 인하, 공공요금 동결 등 정책 효과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10.1%이며, 미국(5%)·독일(7.8%) 등도 물가 안정세에 접어들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장보현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장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물가 둔화 흐름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며 “현재 오이시디에서 3%대 이하의 물가를 기록 중인 국가는 우리나라 외에 스페인(3.1%), 일본(3.2%), 룩셈부르크(2.9%), 스위스(2.7%)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물가 안정세를 바탕으로 정책 당국이 경기 부양책을 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잇따라 하향 조정되는 데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는 터라 정부로선 경기 반등의 물꼬를 트는 게 시급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한은은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이 종전 전망치(1.6%)를 밑돌 수 있다는 언급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정책 당국이 본격적으로 정책 방향을 바꿀지는 미지수다. 우선 물가 상승폭이 둔화되긴 했으나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유류세 정상화와 공공요금 인상 변수가 남아 있고, 무역수지 적자 누적 등에 따른 원화 가치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도 물가 안정세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전 거래일보다 4.40원 오른 1342.10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1340원을 넘은 것은 지난해 11월28일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하반기에는 전반적으로 안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전기·가스요금 인상 시기나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과 환율 등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짚었다.
특히 전반적인 수요 압력을 반영하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 기준) 상승률이 지난해 6월(4.4%) 이후 꾸준히 4% 중후반대에 머물고 있는 점은 정책 당국의 큰 부담이다. 근원물가는 지난달에도 4.6% 올랐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최근 “연내 기준금리 인하는 시기상조”라며 시장 일각의 금리 인하 기대에 선을 그은 것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근원물가 상승률을 염두에 둬서다. 기재부 관계자는 “3%대 물가 상승률이 낮다고 볼 수는 없는 만큼, 본격적인 경기 대응 정책을 생각하기엔 아직 좀 이르다”며 말을 아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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