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뜻 물어볼까 봐 겁나요"…정당 비방 현수막 난립 '눈살'

최지은 기자 2023. 5. 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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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현수막을 보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가 곧 글을 깨칠 나이인데 저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볼까 봐 겁이 날 정도에요."

한 정당이 내건 현수막에는 '더넣어봉투 더불어범죄민주당' '정치탄압 검찰 공화국 운운마라' 같은 문구가 써있었다.

고등학생 김모양(19)은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정당에서 내건 현수막을 많이 보게 되는데 문구가 자극적이다 보니 보기 좋진 않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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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횡단보도에 각 정당들의 현수막이 게시되어 있다. 지난해 6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 시행으로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표시하는 현수막은 별도 허가나 신고없이 15일간 게시할 수 있게 됐지만 현수막이 우후죽순 설치돼 도시미관 훼손과 안전사고 우려 등이 제기돼왔다. 이에 서울시는 관련법 개정 건의와 함께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자치구의 현수막 정비를 지원키로 했다. 2023.03.12.


"정당 현수막을 보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가 곧 글을 깨칠 나이인데 저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볼까 봐 겁이 날 정도에요."

아이와 함께 광화문광장을 찾은 임모씨(39)는 인근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이같이 말했다. 한 정당이 내건 현수막에는 '더넣어봉투 더불어범죄민주당' '정치탄압 검찰 공화국 운운마라' 같은 문구가 써있었다.

정당 정책을 알리기 위한 현수막이 타 정당이나 정치인을 비방하는 정쟁의 도구로 사용되면서 시민들 사이에 정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정당 현수막은 허가와 신고 없이 내걸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 정당 현수막을 게재하기 위해서는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수막 내용에 정당 명칭과 연락처 등을 기재할 경우 법정 게시 기간인 15일이 되기 전까지 철거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 현수막 규격이나 개수에 대한 제한도 두지 않아 거리마다 현수막이 난립하고 있다.

고등학생 김모양(19)은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정당에서 내건 현수막을 많이 보게 되는데 문구가 자극적이다 보니 보기 좋진 않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김모씨(45)도 "외국인들 보기에도 부끄럽고 젊은 사람들도 영향을 받을 것 같다"고 밝혔다.

경북 포항에서 가로등에 현수막 4개를 한 번에 내걸었다가 가로등이 강풍에 넘어지며 지나가던 행인이 부상을 입었다./사진=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각종 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인천 연수구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던 20대가 현수막 끈에 목이 걸려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현수막은 성인 목 정도 높이에 설치돼 있었다. 경북 포항에서도 가로등에 현수막 4개를 한 번에 내걸었다가 가로등이 강풍에 넘어져 행인이 부상을 입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20일 현수막을 2m 이상 높이에 설치하도록 제한하고 어린이보호구역 내 현수막 부착을 금지하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어 제재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현수막 철거를 놓고 정당과 지방자치단체 사이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 1월에는 광주광역시 한 구청이 정의당이 내건 현수막을 철거했다가 불법 철거 논란이 일었다. 2월에도 서울 송파구에서 구청이 진보당의 현수막을 철거했다가 진보당 구위원장과 구청장 사이 설전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같은 폐혜를 줄이기 위해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 발의에 나섰다. 지금까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발의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은 모두 9건이다. 개정안에는 현수막 개수와 규격을 제한하고 이를 위반한 현수막은 철거 등 행정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법적인 규제보다는 정치권의 자정 작용이 더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국회의 자정 작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현재의 모습은 정당들 사이 소모전을 하는 양상이고 그만두자고 합의하지 않는 이상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 입법권이 있는 만큼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회의 의지가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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