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의 대선배가 가셨다”
제약업계 조문행열...“소박하게 장례 진행”
장례식장은 고인 후원 받은 장애인들 눈물바다
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장례식장. 고(故)이종호 JW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는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한 조문객 발길이 이어졌다. 고인의 영정을 마주한 이들은 “국내 제약업계 대선배가 가셨다”며 애도를 표했다. 추모객들은 약다운 약을 만들어 국민 건강을 지키겠다는 ‘제약보국(製藥保國)’을 위해 평생을 제약 산업 발전과 보건의료에 힘을 쏟은 고인을 기렸다.
지난 30일 별세한 이 명예회장의 장례식장은 소탈하고 검소했다. 일반적인 기업인의 경우 장례식장 문 앞을 화환으로 가득 매웠을 텐데 이 회장의 빈소엔 JW그룹과 고인의 모교와 일부 단체에서 세워 놓은 근조기 10개만이 놓여있었다. 다만 장례식장 내부 벽을 따라 고인의 마지막을 기리기 위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을 비롯해 각계각층이 보내온 화환에서 떼어 낸 띠들이 보였다. JW그룹 관계자는 “근조화환은 받지 않으려 했는데 부고 소식을 접한 이들이 보내와 어쩔 수 없이 내부에 세워둔 것을 제외하고는 띠만 따로 챙겨 벽에 걸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명예회장은 평소 검소를 실천한 기업가였다. 수입차 대신 국산 기아의 레저용차(RV) 카니발을 타고 다녔다. 서울고와 동국대 법대를 졸업한 고인은 1966년 제약 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대학을 졸업한 뒤 증권사에 입사해 20대에 이사 직함을 달 정도로 탄탄대로를 겪었지만, 부친인 고(故) 이기석 창업주의 사업이 위기를 맞자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부도 위기를 넘긴 뒤 검소함이 몸에 배었고, 이는 신약 개발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흡사 고인의 호인 송파(松坡·언덕 위의 소나무)의 모습을 담아내듯 소나무를 그림을 배경으로 찍은 이 명예회장이 활짝웃는 모습을 담은 영정사진이 조문객을 맞았다. 상주인 장남 이경하 JW그룹 회장은 이날 빈소를 찾은 조문객과 일일이 묵례를 나눴다.
이날 12시쯤 빈소를 찾은 원희목 전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서울대 특임교수)은 “제약산업의 대선배가 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원 전 협회장은 올해 1월 국내 제약산업의 대표 원로모임인 팔진회(八進會) 마지막 모임에서 고인을 만났다고 했다. 원 전 협회장은 “당시만 해도 고인은 정정했었는데 그게 고인과 마지막 만남이 될지 몰랐다”고 회상했다.
고인은 올 초 48년 동안의 여정을 마무리한 팔진회 구성원 중 한 명이다. 팔진회는 지난 1975년 국내 주요 제약기업 오너 경영인 8명이 ‘여덟 사람이 함께 나아가자’는 뜻을 담아 제약산업 발전을 끌어가고자 발족한 모임이다.
팔진회는 고인과 함께 강신호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과 김승호 보령 회장,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 유영식 옛 동신제약 회장과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故) 윤영환 대웅제약 회장, 어준선 안국약품 회장, 허억 삼아제약 회장이 결성했다. 팔진회 결성 당시 30대와 40대 ‘젊은 피’였던 이들은 이제 국내 제약업계 원로가 됐다. 강신호 회장은 96세, 김승호 회장은 91세로, 가장 젊은 윤원영 회장이 85세다. 김 회장은 전날인 1일, 윤 회장은 이날 오전 고인을 만나기 위해 빈소를 찾았다.
이날 오후에도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을 비롯,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최광훈 대한약사회장 등 국내 제약사와 관련 단체장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잔뜩 상기된 얼굴의 장애인들도 이종호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일부는 이 명예회장의 영정사진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부축을 받고 고인에게 국화를 헌화하고 이경하 회장과 묵례를 나눴다. 이 명예회장은 2003년부터 중증 장애인으로 구성한 합창단 ‘영혼의소리로’를 후원해왔다. 회사 관계자는 “이 명예회장은 천사들의 노래라고 적극적으로 장애인 합창단을 지원했다”며 “합창단원들은 명예회장이 자신들을 아껴준 고마운 할아버지로 기억했다”고 전했다.
JW중외그룹 전현직 직원들도 고인의 마지막 길에 함께 했다. 비서 업무를 맡았던 전현직 직원들은 빈소 외부에서 고인을 기리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고인이 생전 사람과 인연을 소중하게 여겼다고 JW그룹 직원들은 입을 모았다. 이 명예회장은 일부 공장 직원들이 점심을 굶는다는 얘기를 듣고 제약업계에서 처음으로 사내 급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임직원과 소통을 위해 사보도 만들었다.
고인의 장례는 JW그룹 회사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이달 3일 오전 7시다. 고인의 유해는 5월부터 JW그룹이 새 둥지를 트는 경기도 과천 신사옥에 들른 이후 장지인 경기 연천군 중면 횡산리 선영으로 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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