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적자 방치하다 사장에 책임 떠넘기는 당정
조정 전제로 한전 추가 대책 요구
與, 정승일 사장 등 경영진 압박
한국전력공사가 전기요금을 제 때 올리지 못해 대규모 영업손실(적자)을 기록 중인 가운데, 여당에서는 정승일 한전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당정은 한전이 발표할 20조원 규모의 추가 자구책을 전제로 조만간 요금 조정을 마무리한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일정을 내놓지는 않았다. 전기요금은 정부가 결정하는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요금 인상이 부담스러운 정치권이 한전 경영진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한전과 한국가스공사는 이번 주 ‘20조원 + 알파(α)’ 규모의 경영 혁신 방안을 확정해 정부, 여당에 제출할 예정이다. 임금동결안이라고 볼 수 있는 임금인상분 반납, 인력 구조조정 등이 핵심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사장 주재 회의를 거듭 소집해 경영진 등 구성원들과 관련 논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2분기(4~6월) 전기요금은 지난 3월 말에 결정됐어야 하지만, 당정은 요금 발표를 앞두고 국민 여론을 반영해야 한다는 이유로 일정을 보류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4월 24~30일) 일정과 맞물리며 4월에도 인상하지 못했다.
앞서 정 사장은 지난달 21일 전기요금 인상 관련 입장문을 내고,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인건비 감축 등이 포함된 추가 대책을 조속한 시일 내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했다. 정 사장은 윤 대통령 방미 경제사절단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는데, 추가 대책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 반영됐다는 게 한전 측 설명이다.
최근 여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는 한전의 추가 자구책 마련에 이어 정 사장의 사퇴를 주장하며 경영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문재인 정부 당시 임명된 정 사장에 사퇴를 요구해 요금 논란 책임을 전 정부로 돌리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 사장은 산업부 차관을 거쳐 2021년 6월 임명됐고,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지난달 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 사장이) 경영난에 책임지지 않고 계속 자리보전에 연연하는 모습은 국민 앞에 결코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달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방만경영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그 자리에서 물러나길 바란다”며 정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전기요금 결정 권한이 없는 한전 입장에선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형식적으로 전기요금 최종 결정권은 정부에 있다. 현행법상 전기요금은 한전이 산업부에 요금 조정안을 제출하면, 예산을 관리하는 기재부와 협의를 통해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
한전은 전기요금 현실화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분을 전기요금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면서, 한전은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가 커지고 있다. 전기를 비싸게 매입해 싸게 파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전은 2026년까지 적자를 해소하려면 올해 킬로와트시(㎾h)당 51.6원을 인상해야 한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올해 1분기에 한전은 전기요금을 ㎾h당 13.1원 인상했다.
전기요금을 제때 인상하지 못한 여파는 전력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한전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막대한 적자를 기록할 경우 투자 여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특히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대금 결제, 발주 등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중장기적으로는 전력 공급 안정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지난 2021년 5조8500억원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32조원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 적자를 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도 한전이 10조원대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전은 채권 발행으로 적자를 메우는 상황인데, 우량하면서 금리가 높은 한전채가 대거 쏟아지면 시장의 자금을 흡수해 채권 금리가 전반적으로 올라간다. 올해 1분기 한전채 발행 규모는 약 8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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