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발목 잡았던 ‘전차지옥’, 이번엔 우크라 ‘대반격’ 발 묶었다
봄·가을마다 진흙탕으로 변해
수도 방어 ‘1등 공신’ 꼽혔지만
이젠 땅 굳기를 기다리는 처지
러시아어로 ‘진흙의 계절’이라는 뜻의 라스푸티차(Rasputitsa)는 매년 봄과 가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지의 토양이 진흙탕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크라이나어로는 ‘베즈도리자’로 불린다. 세계적인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는 체르노좀(Chernozom)이라고 불리는 검은색 토양 지대가 넓게 분포하는데, 영양분은 풍부하지만 점토질인 이 땅은 봄이 되면 검은 진창으로 변한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전차의 진격으로부터 수도 키이우를 방어한 ‘1등 공신’으로 꼽힌 이 진흙탕이 이번에는 우크라이나가 오랫동안 벼려온 ‘봄철 대반격’을 지연시킨 변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서방 각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주력 전차 등이 이 진흙탕에 발목이 잡힌 가운데 우크라이나 여러 전선에서 땅이 굳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남동부에 배치된 제43독립포병여단은 사실상 기동을 멈춘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독일제 PzH-2000 자주포로 무장한 이 부대는 탄약이 넉넉한 데다 충분한 휴식도 취해 전력이 양호한 상태로 평가 받지만, 질퍽한 땅이 마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평년보다 많은 봄비가 내린 데다 우크라이나군이 반격 목표로 설정한 동남부 자포리자주는 최근 몇주간 지속된 폭우로 인해 전장이 “젤라틴 스프”처럼 변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실제 지난주 자포리자에 배치된 43여단 후방 진지에서 진창에 빠진 자주포 한 대를 견인하고 청소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43여단은 중량이 60t에 달하는 이 자주포가 진창에 빠져 탈출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해 일단 자주포를 모두 전장에서 철수시켰다.
병사들의 장화 뿐만 아니라 전차 바퀴까지도 묶어두는 이 진창의 위력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하다.
라스푸티차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과 1941년 히틀러의 소련 침공을 좌절시킨 요인 중 하나로, 전쟁사에서 공격 측에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라스푸티차 시즌이 끝나고 땅이 굳어야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병력 이동과 포격 횟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대반격 시기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올렉시 레즈니코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이날 국영 TV에 출연해 “우리 군은 결승선에 도달하고 있다”며 “반격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수행될지를 지휘관들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에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전승절(5월9일)에 맞춰 러시아 본토의 주요 도시와 접경지 등에서 테러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안드레이 클린체비치 군사·정치분쟁 연구센터장은 러시아 현지 언론에 “우크라이나군이 오는 9일까지 우리 영토 깊숙이 침투해 큰 도발을 감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며“ 공격 목표는 브랸스크 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접경지 도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미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군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이 발생한 접경지역 대신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서 사보타주(고의 파괴 공작)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민심의 법정서 이재명은 무죄”···민주당 연석회의 열고 비상행동 나서
- 40대부터 매일 160분 걷는 데 투자하면···수명은 얼마나 늘어날까?
- 드라마인가, 공연인가…안방의 눈과 귀 사로잡은 ‘정년이’
- 중학생 시절 축구부 후배 다치게 했다가···성인 돼 형사처벌
- 은반 위 울려퍼진 섬뜩한 “무궁화꽃이~”···‘오징어게임’ 피겨 연기로 그랑프리 쇼트 2위
- ‘신의 인플루언서’ MZ세대 최초의 성인···유해 일부 한국에 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