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판왕 악녀 대신 성격파탄자 김유석 내세운 '하늘의 인연'의 영리한 선택

모처럼 스케일 큰 MBC 일일극 ‘하늘의 인연’, 스타트가 좋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하늘의 인연>은 오랜만에 보는 스케일이 큰 MBC 일일드라마다. MBC 일일드라마는 아침드라마의 저녁 버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MBC 일일극은 최근 1년 동안 이승연과 장서희라는 스타 배우를 내세워 <비밀의 집>과 <마녀의 게임>을 방영했다. 하지만 <비밀의 집>의 함숙진(이승연)과 <마녀의 게임>의 설유경(장서희)은 배우들이 지닌 존재감에 비해서 그렇게 흥미로운 인물들은 아니었다. 특히 <비밀의 집>은 함숙진의 악행으로 매회 긴장감을 채우는 게 전부였다. <마녀의 게임>은 설유경과 정혜수(김규선)의 복수극이 생각보다 흥미롭게 이어지지 않았다.

반면 새로 시작한 <하늘의 인연>은 꽤 스케일이 큰 이야기를 조금씩 밟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채워간다. 밝고 씩씩한 고아 소녀 이해인(김시하)을 중심으로 그녀의 출생과 관련된 어른들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는 이야기다. 여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준 이해인에 대한 하진우(이주원)의 풋풋한 사랑 느낌도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한편 <하늘의 인연>에서는 강치환(김유석)과 나정임(조은숙)의 대결구도를 통해 스릴러적인 재미도 주고 있다. 강치환은 재벌가의 사위지만 그 집안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콤플렉스를 안고 있다. 그는 이해인의 생부이기도 한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해인에게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무서운 모습에도 해인은 강치환에게 알 수 없는 부성을 느끼게 된다.

한편 나정임은 이 모든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해인의 친모와 강치환의 관계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해인에게는 착한 선녀 같은 존재이지만 그녀 역시 마냥 착한 사람만은 아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긴장감이 <하늘의 인연>에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하늘의 인연>은 특히 일일극의 클리세인 나쁜 악녀 끝판왕 대신 성격파탄자인 강치환을 악역의 중심에 놓는다. 물론 그의 아내 전미강(고은미)도 충분히 악녀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중심은 역시 강치환이다.

그리고 항상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김유석은 강치환이라는 악역을 통해 오랜만에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다시 각인시킬 기회를 얻었다. 일일극 특유의 부드러운 중년의 미남 배우들에 비해 뭔가 암울해 보이는 이 배우는 악역 캐릭터의 존재감을 굉장히 잘 살리고 있다. 최근 종영한 KBS 일일극 <태풍의 신부>의 손창민이 악역 강백산을 맡았지만 그리 인상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것과 대조적인 연기다.

특히 김유석은 호소력 있는 눈물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이기도하다. <하늘의 인연>의 강치환은 콤플렉스 덩어리의 악역이지만 동시에 여린 마음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기도하다. 그렇기에 강치환이 이해인이 친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보여줄 감정 연기가 사뭇 기대가 되기도 한다. 또 정치드라마에서 표독한 재벌가 장년 남자를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배우 정한용의 전상철 연기 또한 기대된다.

이처럼 <하늘의 인연>은 전작 MBC 일일드라마와 달리 존재감 있는 스타 배우는 없기에 첫 스타트의 시청률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시청률이 오르고 있다. 익숙하지만 쫀쫀하고 궁금한 전개로 풀어가는 이야기 구성과 아역과 중견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 덕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인기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좀 지켜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일단 일일드라마의 최고 기술인 매회 차의 마무리가 아쉬운 것이 감점이다. 뭔가 궁금해서 안달이 나는 지점이 아닌 애매한 지점에서 항상 끝을 맺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연 아역배우들의 존재감이 성인배우들로 바뀌었을 때 그만큼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늘의 인연>이 매번 배우만 바뀌는 것 같은 최근 일일드라마들에 비해 매력적인 스타트를 보여준 것만은 사실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