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에는 없다, 골든헤어북스에는 있다

한겨레21 2023. 5. 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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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책방 기행]에든버러가 사랑하는 독립서점 ‘골든헤어북스’, 가격 할인 없이도 작은 서점이 생존하는 법
2012년 영국 에든버러 스톡브리지에서 시작한 독립서점 ‘골든헤어북스’. 한미화.

2023년 4월 주말의 에든버러 웨이벌리역은 혼잡했다. 에든버러는 영국에서 런던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이 몰려드는 도시다. 코로나19 대유행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웨이벌리역에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에든버러에 첫발을 딛는 이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월터 스콧 기념비’다. 높은 빌딩 하나 없는 도시에서 이 거대한 모뉴먼트(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기리려는 조형물)는 단연 눈길을 끄는데, 에든버러 최고의 작가 월터 스콧을 기념한다. 웨이벌리역이라는 이름 또한 스콧의 작품에서 따왔으니 에든버러의 문학 사랑이 느껴지는 도시의 도입부가 아닐 수 없다.

긴 비와 혹독한 추위는 독서를 부르는 걸까

에든버러는 두 얼굴을 지녔다. 프린지페스티벌(거리예술축제)이나 문학페스티벌이 열리는 다채로운 여름은 도시가 가장 빛나는 시간이다. 하지만 나머지 기간은 비가 내리고 혹독한 추위가 이어진다. 도시의 오래된 건물이 거리에 그늘을 드리운다. 쾌적한 여름을 제외한 긴 기간에 에든버러 사람들은 책을 읽는 걸까 싶을 만큼 이곳에는 서점이 많다.

물론 에든버러에도 소매점 WH스미스나 대형서점 워터스톤스가 있다. 심지어 번화가인 프린스스트리트의 워터스톤스 2층 카페는 에든버러성을 보기 가장 좋은 장소로 이름이 높다. 그러나 에든버러 최고의 서점은 워터스톤스가 아니다. 이 도시의 주인공은 작은 독립서점들이다.

에든버러 출신 추리 소설가 이언 랜킨은 과거 제임스 신스(James Thin's)와 바우어마이스터(Bauermeister) 북스라는 큰 독립 서점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두 서점은 2천년대 초반 모두 문을 닫았다. 다만 신스는 블랙웰스가 인수해 영업 중이다. 에든버러라고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영향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독립서점이 지속적으로 생겨나며 에든버러 책방 생태계를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그중 골든헤어북스(Golden Hare Books)는 에든버러 독자가 단연 사랑하는 서점이다. 그곳에 가려면 웨이벌리역에서 버스로는 10여 분, 걷는다면 20분 넘게 걸린다. 서점이 자리한 스톡브리지는 에든버러에서 아름다운 거리로 손꼽힌다. 관광객이 몰려드는 중심지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새소리가 들리는 한적한 마을에 ‘조지안 시대 스타일’(1714~1830년 비례와 대칭을 강조하는 양식)로 늘어선 주택을 만날 수 있다. 주택 1층에 자리한 소박한 지역 상점 중 하나가 골든헤어북스다. 2012년 스톡브리지에 문을 열었으니 골든헤어북스는 벌써 10년을 넘긴 독립서점이다.

골든헤어북스를 찾은 날, 변덕스럽게 비바람이 왔다 갔다 하는 전형적인 영국의 봄날씨로 추웠다. 짙은 남색으로 칠해진 서점 문을 열자마자 바로 온기가 느껴졌다. 책이 전하는 온기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벽난로에 장작이 타고 있었다. 에든버러의 한기를 몰아내는 물리적인 따뜻함이었다. 매니저인 조너선과 재스민이 서점을 지키고 있었다. ‘작은 서점에 직원이 둘이나 있네’라고 생각했지만, 재스민은 서점주인 마크 존스의 손녀였다. 조너선의 친척도 멀지 않은 곳에서 라이트하우스 서점을 운영한다니, 이곳에 모종의 서점 연대가 있나 싶었다.

지역 예술가가 작업한 금빛 토끼 조각이 걸려 있는 골든헤어북스 외부. 한미화 제공

주인은 박물관 출신, 매니저는 대형서점 출신

골든헤어북스를 우리말로 바꾸면 ‘금토끼 책방’이다. 서점 외부에 금빛 토끼 조각이 멋들어지게 걸려 있다. 마크 존스가 서점을 시작하며 지역 예술가에게 의뢰해 제작했다는 매혹적인 금빛 토끼 조각은 신비하고 마술적인 느낌까지 든다. 금토끼 이미지는 에코백 등 여러 제품에 일관되게 사용된다. 취급하는 도서는 주로 예술과 문학 그리고 그림책 분야다. 서점 크기는 아담하지만, 뒤쪽으로 길게 이어져 겹겹의 레이어(층)를 보여준다. 서점을 시작하기 전, 존스는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에서 일했다. 예술과 디자인에 대한 전문성은 서점의 콘텐츠로 이어졌다. 아티스트와 공동제작한 소품을 판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에든버러 출신 예술가 로버트 파월이 작업한 사계절 연하장이나 아그네스 존스가 그린 드로잉 엽서는 오직 골든헤어북스에서만 만날 수 있다.

매니저로 일하는 조너선 역시 이력이 흥미로웠다. 그는 영국의 최대 서점 체인 워터스톤스에서 일하다 골든헤어북스에 합류했다. “왜 독립서점을 선택했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워터스톤스에서 일하면 원하는 책을 주문할 수 없어요. 워터스톤스에서는 그럴 자유가 없지만, 여기선 원하는 책이라면 무엇이든 주문해 책방에 진열할 수 있어요. 서점에서 일하는 가장 큰 기쁨을 택한 거죠.”

도서정가제가 없는 영국은 아마존뿐 아니라 대형 체인 서점에서도 당연히 책을 할인해 판매한다. 그렇지만 골든헤어북스 어디에도 책을 할인판매한다는 문구를 발견할 수 없었다(다만 독서클럽 회원이 되면 선정 도서를 1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이 작은 서점이 워터스톤스나 블랙웰스와 경쟁할 수 있나 싶어 조심스럽게 괜찮은지 물었다. 서점에서 일한 지 15년이 된 조너선은 아마존과 전자책 서비스 킨들이 대중화하는 동안 독립서점이 차례로 문 닫는 과정을 지켜봤다. 폐업의 여파로 영국 독립서점이 ‘일종의 정체 상태’에 빠졌던 게 사실이다.

3년 동안 독립서점 4곳 더 생겨나

그러나 독자는 전자책과 아마존을 경험하며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았고, 자기 스타일에 맞는 서점을 선택하는 법도 배웠다. 골든헤어북스를 찾는 독자는 워터스톤스나 블랙웰스에 없는 책을 만나러 오는 이들이다. 그러니 책 할인을 하지 않는다고 불리할 일도 없다고 조너선은 잘라 말했다. 지난 3년여간 에든버러에는 독립서점 4곳이 더 생겼고 모두 다른 모습이다. 계속 줄어들던 영국의 독립서점은 이렇게 자생의 길을 찾았다.

한미화 <동네책방 생존탐구> 저자

*안녕, 유럽 서점: 유럽의 서점을 돌아보며 우리 서점의 내일을 생각해본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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