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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로 많은 여성에게 성차별적 언어에 대응하는 법을 알려준 이민경이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딴 어학원을 차려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여성들을 국외로 내보낸다(!)는 소문을 들었다. 우리에겐>
"세상이 순서를 정해주죠. 영어 다 하고 나중에 하라고. 그럼 평생 프랑스어 못해요. 우리는 평생 영어를 못할 거기 때문에. 사치의 어원이 '과잉'이거든요. 필요하지 않다는 걸 뜻하는데, (남성 중심) 세상은 여자에게 '자기 삶'이라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보잖아요. 다 나중에 하라고. 저는 여성들이 지금 바로 몰두할 만한 어떤 걸 제안하고 싶었고, 프랑스어는 제가 자신 있게 가르칠 수 있어서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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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로 많은 여성에게 성차별적 언어에 대응하는 법을 알려준 이민경이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딴 어학원을 차려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여성들을 국외로 내보낸다(!)는 소문을 들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프랑스어를 배워도 되려나.
“세상이 순서를 정해주죠. 영어 다 하고 나중에 하라고. 그럼 평생 프랑스어 못해요. 우리는 평생 영어를 못할 거기 때문에. 사치의 어원이 ‘과잉’이거든요. 필요하지 않다는 걸 뜻하는데, (남성 중심) 세상은 여자에게 ‘자기 삶’이라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보잖아요. 다 나중에 하라고. 저는 여성들이 지금 바로 몰두할 만한 어떤 걸 제안하고 싶었고, 프랑스어는 제가 자신 있게 가르칠 수 있어서 시작했어요.”
프랑스어 통번역,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이민경은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배우는 학습법에 대한 특허도 출원했다. “페미니즘적 인식으로 접근했어요. 우리가 모국어라는 말을 쓰잖아요. 부국어가 아니고. ‘모’는 ‘자연’으로 여겨지는 반면 외국어는 ‘부자연’스럽다는 관념으로 이어지죠. 하지만 모성도 자연물이 아니거든요. 누구도 저절로 엄마가 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외국어와 모국어를 같은 선상에서 보고, 우리가 아이일 때 한글을 배운 것처럼 어른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요. 필기도 암기도 없어요, 초반엔. 우리도 그런 식으로 말문을 튼 게 아니니까.”
그는 이 학습법을 한국어에 관심 있는 외국인 여성에게 적용했다. “방금 독일인 친구한테 진은영의 시를 읊어줬어요.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기서 ‘거리’가 두 번 나오잖아요. 같은 소리인데 다른 의미일 때가 있고, 다른 소리인데 같은 의미일 때도 있죠. 이 혼란함을 견디다보면 어느새 언어가 늘어 있어요. 하지만 많이들 혼란한 꼴을 못 보죠. 저는 그냥 인정하기로 했어요. 나는 인생이 혼란하다, 대신 잘 수습하고 살자.”
이민경은 상상을 삶으로 끌어오는 운동을 했다. 페미니즘 대중화, 낙태죄 폐지 운동, 탈코르셋 운동, 커밍아웃 등. 그에게 엘엠지(LMG) 어학원은 어떤 의미일까. “여성들이 어딘가로 나갈 수 있게 돕는 것. 시간에 대한 정치 같기도 해요.”
여성들은 시간에 쫓긴다. 이성애와 결합한 가임기 시간에서 서른도 되기 전 ‘넌 이미 끝났다’는 말을 듣기도. “저는 레즈비언이 되면서 거기에서 해방됐고, 천천히 하나씩 했거든요. 헤테로(이성애자) 여성이 이런 구조를 자기 노력으로 바꾸기 어려워요. 바깥세상과 다른 곳에 여성을 소비자로서 입장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실제 그곳은 다양한 국적의 여성들이 오가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했고, 여자를 사귀는 게 ‘기본’처럼 느껴져 남자친구 얘기를 묻는 게 더 이상했다.
“레즈비언의 문화를 팔고 싶어요. 이성애자 여성도 레즈비언의 시간성을 체험할 수 있게. 더 자유로워질 수 있게. 우리끼리 집 지어서 살 수도 있지만 시장에 내놓으면 누가 사갈지 모르거든요.”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이민경의 추천 플레이리스트
❶드러머 은아경의 〈Tierrasanta〉 연주
https://youtu.be/G47i8qm_AS4
요즘 드럼에 빠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드럼을 쳤더라면 프랑스어를 안 했을지도 모른다. 내겐 몰두할 만한 어떤 리듬 같은 게 필요했고, 예술을 하면 엄마에게 혼나니까 그나마 밥 벌어먹는 예술 중 하나가 외국어였다. 드럼을 치고 싶어진 날 전세계 드러머 영상을 찾아보다가 이 영상에서 멈추게 됐다.
❷단하나 커플의 밀착 브이로그
https://youtu.be/eQr33I-lx_s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기 한참 전, 웨딩 사진으로 충격을 남긴 레즈비언 커플이 현실에서 함께 일하는 모습. 유튜브에서 유일하게 여러 번 본 영상이다.
❸매니저 제대로 확대(?)하는 리치 언니 박세리
https://youtu.be/0emzDX5dudY
여자 상사와 직원이 티격태격하면서도 화기애애하게 회식하느라 25㎏이 불어난 이야기라니!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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