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에 제동 걸린 '실거주의무 폐지'…수분양자 어쩌나

이하은 2023. 5. 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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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주 폐지 담은 '주택법 개정안' 국회 계류
'전세 특별법'에 갭투자 우려까지…통과 난항

분양 아파트의 실거주 의무 폐지가 불투명해지며 수분양자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현재 국회는 전세사기 대책을 우선 논의하고자 다른 법안들은 잠시 미뤄뒀다.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면 갭투자가 다시 성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법 개정을 믿고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당첨자들의 불만이 나온다. 입주 전까지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지 않으면 임대, 투자 등의 목적으로 주택을 매입한 이들도 입주해야 한다. 지난 1월 정책 방향이 발표된 뒤 4개월 째 표류하면서 정책의 신뢰도도 위협받고 있다.

전세 피해 대책을 설명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입도 못 뗀 실거주 폐지 논의

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오는 10일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달 26일 열렸던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사할 계획이었지만, 전세사기 대책 등에 밀려 이번 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시작조차 못 했다.

현재 수도권에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주택을 분양받으면 최대 5년간 해당 주택에 거주해야 한다. 그런데 분양시장이 침체하면서 신축임대 공급 등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올해 1월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폐지를 위해선 주택법을 개정해야 해 지난 2월 초 관련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후 3월과 4월 법안심사소위가 두 차례 있었지만, 다른 현안에 밀려 해당 개정안은 논의되지 않았다.

특히 최근에는 전세사기 우려가 커지면서 실거주 의무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임대를 목적으로 주택을 분양받게 되면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는 집주인의 '갭투자'가 성행하고, 보증금 미반환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최근 국회가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처리에 집중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주택법 개정 등은 더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특별법은 지난 1일 법안소위를 통과하지 못했고, 오는 3일 추가 심사를 예정했다.

국토위 관계자는 "주택법 개정안은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 좀 더 준비 후 논의하기로 했다"며 "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인천 미추홀구의 한 주택/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시장 이미 움직였는데…수분양자 불똥

실거주 의무 폐지 방침은 단숨에 분양시장을 달궜다. 지난 1월3일 이같은 대책이 발표된 후 서울의 청약 경쟁률이 급증했다. 직접 거주하지 않으면 자금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기존 주택 처분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 투자 수요가 몰렸다.

지난 3월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 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무순위 청약의 경우 899가구를 모집에 3만1540명이 몰렸다. 당시 청약 물량은 대부분 소형 평수로 실거주보단 임대를 목적으로 한 투자자들이 청약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관련 기사:[집잇슈]4만명 몰리며 '둔촌주공 살리기' 마무리...돌아온 '줍줍족'(3월10일)

문제는 정부가 실거주 의무 폐지를 약속하면서 '소급 적용'까지 공언한 점이다. 오는 7월부터 입주를 시작하는 서울 은평구 DMC SK뷰아이파크포레(1466가구), DMC 파인시티자이(1223가구) 등의 입주 예정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만약 입주 전까지 주택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대부분 입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현행법에 따르면 실거주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입주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해당 주택을 매도해야 한다.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등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성급한 대책 발표로 정책 신뢰도를 깎아내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개 여야가 부동산 정책에 상반된 입장이었던 만큼 국회의 진통은 예상된 순서였다. 과감한 규제 완화를 약속하면서 시장 경착륙은 막았지만, 정책을 믿고 따른 수분양자 등은 난감한 상황이 됐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분양권 전매만 완화되면서 정책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정책 신뢰도를 위해선 폐지를 계속해서 추진하는 게 맞지만, 부작용을 막기 위한 해결책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하은 (le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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